추수 감사주일: 불완전한 제사를 완전케 하신 그리스도
- seattleomc
- 6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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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 계신 분들과 인사 한번 하겠습니다.영으로 한번 하죠. 무슨 말 할지 아시죠?
해피 땡스기빙.영어로도 한번 하겠습니다.해피 땡스기빙.
여러분, 추수감사절이면 항상 마음이 즐겁습니다.왜 즐겁습니까?
풍성하기 때문입니다.아멘.
풍성함뿐만 아니라,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그리스도 예수를 이 땅에 보내 주셨고,
그 예수로 말미암아감히 나아갈 수 없던 하나님 앞에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에우리는 은혜 가운데, 감사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 예배 중에 성만찬을 행할 텐데,여러분들이 성만찬을 할 때포도즙, 포도주에 대해서는대부분 잘 이해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것은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흘리신 피다라는 것을 다들 알고 계시죠.
그런데 함께 떼는 떡에 대해서는상대적으로 깊이 묵상하지 못하고,그냥 “주님의 몸이다” 정도로만 생각하며지나갈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이 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그리고 이 떡은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를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성만찬을 할 때“아, 이 떡이 나에게 이런 의미를 주시는구나”하고 마음에 새기며 참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모세를 통하여 제사 제도를 세우시고,그 규례들을 정하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죄인 된 인간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을까?이 질문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하나님과 아담이 누렸던 그 교제,그 친밀함,함께했던 그 시간들을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제사 제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모세를 통해 규례를 제정하시고,그 규례를 통하여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열어 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사람들이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 앞에 오면그 제물 위에 안수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죄를그 제물에게 전가합니다.죄를 옮긴다고 말하죠.
그러면 그 사람에게 죄가 있습니까?없습니까?
옮겼기 때문에 없는 겁니다.
원래는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제사장이그 재물을 대신 잡는 겁니다.
그래서 그 죄인 된 사람이재물이 죽어 가는 모습을 눈으로 보면서“아, 내가 저렇게 죽어야 되는데나 대신 이 재물이 죽는구나”라는 것을 실제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제사장은그 재물을 불로 태우든지,아니면 광야로 내보내서짐승들의 먹이가 되게 하든지 하여그 재물을 죽게 합니다.
그 후에,죄를 가지고 제사장 앞에 나왔던 그 사람에게제사장이 이렇게 선포합니다.
“당신은 이제 죄가 없습니다.”
그 선포를 들은 사람은다시 자신이 속해 있던 공동체로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이 제사를 어디에서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까?
아무 데서나 하지 말고,성소에서 행하라,성전에 와서 이것을 행하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성전의 구조를 보면크게 둘로 나눌 수 있고,조금 더 세분하면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러분,지금 우리가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이 성전 구조 개념으로 말하면,우리가 처음 들어오는 이 공간은성소의 뜰에 해당합니다.
이 뜰에는여인도 들어올 수 있고,이방인도 들어올 수 있고,모든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이 뜰 안에다시 하나의 장막이 쳐집니다.
그 장막을 지나 들어가면이제 본격적으로 성소가 시작됩니다.
지금 여러분이교회 예배당 안으로 들어와 앉아 있는 것처럼,이 성소는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신제사장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이 성소를더 나누면성소와 지성소로 나뉘게 됩니다.
이 둘은 휘장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지성소가 보이지 않도록휘장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죠.
성소는제사장이 매일 들어올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지성소,곧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그곳은1년에 단 한 번,
대제사장이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죄를 지고들어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은뜰 → 성소 → 지성소이렇게 구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소에 들어가면,성소에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에 무엇이 있느냐 하면떡상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찬 예식을 위해이렇게 상을 차려 놓았지 않습니까?바로 그 자리가 성소의 오른쪽입니다.
그리고 성소의 왼쪽에는등잔대가 놓여 있습니다.히브리 사람들은 이것을 메노라라고 부르지요.살구꽃 모양으로 된 등잔대입니다.
그리고 성소에 들어가자마자중앙에는 무엇이 있습니까?바로 분향단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하나님, 오늘 드리는 예배가향기로운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바로 그 분향단을 말하는 겁니다.
분향단에서 향을 피움으로써예배가 하나님께 올라가는향기로운 예배가 된다는 의미가 있고,또 향 연기가 퍼져 나가면서마치 안개처럼 공간을 채우는 모습을 통해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거룩한 거리, 구별이 있다는 의미도여기에 함께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성소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이 떡상,그리고 이 떡상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또 오늘 우리가 집행하는 성찬 예식과어떤 연관이 있는지를집중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떡상 위에는한쪽에 여섯 개,다른 한쪽에 여섯 개,도합 열두 개의 떡이 놓여 있습니다.
열두 개를 한 줄로 놓은 것이 아니라여섯 개씩 두 줄로 쌓아떡상 위에 차려 놓은 것입니다.
이 열두 개라는 숫자는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합니다.떡상 위의 떡은열두 지파를 대표하면서,동시에 이스라엘 전체,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의미하는 상징입니다.
여러분,베들레헴이라는 말 들어보셨지요?히브리어입니다.
우리는 최소한히브리어 단어 하나쯤은알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
베들레헴에서**‘레헴’**이라는 단어는무엇을 뜻하느냐 하면떡, 곧 빵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은“떡의 집”,“빵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또 하나의 표현이 등장합니다.**‘파님(파임)’**이라는 단어인데,이 말은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떤 표현에서는“떡의 집”이 아니라“떡의 얼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왜 하필 떡의 얼굴일까요?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노출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형상을 전혀 노출하지 않으셨느냐 하면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자신을 노출시키셨느냐 하면**‘떡’**으로 노출시키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하나님의 함께하심,하나님의 모습이이 떡을 통하여 나타난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내가 너희와 함께한다”라는 사실을떡을 통해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떡상 위에는열두 개의 떡이 놓여 있습니다.
이 열두 개는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의미하지만,이 떡이 가진 모양에도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둥근 떡의 모양을 가리켜히브리 사상에서는“떡의 얼굴”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이 떡은하나님의 얼굴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무엇이냐 하면,하나님과 열두 지파가연합되어 있고,하나님과 열두 지파가한 가족,한 백성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하나님의 얼굴을 사모합니다”라고 말할 때,그것은 단순히 어떤 모습을 본다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한다라는 뜻이 됩니다.
반대로 성경에서“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셨다”라는 표현이 나오면,그것은 하나님께서 떠나셨다는 뜻,곧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졌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야곱의 이야기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도망가듯 떠날 때,그가 잠자리에 들며 기도합니다.
그때하늘에 사닥다리가 놓이고,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환상을 보지요.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라반의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야곱은 얍복강에서천사와 씨름하게 됩니다.
그 씨름을 마친 뒤야곱이 그곳의 이름을 무엇이라 부릅니까?
“브니엘”이라고 부릅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였다”라는 뜻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레헴’은 떡이고,‘파님’은 얼굴입니다.그리고 여기에 ‘엘’, 하나님이 붙으면하나님의 얼굴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야곱은 실제로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고,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한 사람으로고백한 것입니다.
이제 이 떡이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한번 보겠습니다.
이 떡은떡상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진설병”이라고 부르지요.진설했다,곧 상 위에 차려 놓았다는 뜻입니다.
떡을 상 위에 차려 놓는다는 것은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하나님의 은총,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상에 음식을 차린다는 것은성경적 개념으로 보면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 의미는 무엇이냐 하면,하나님께서 우리를가족으로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시편 23편을 보십시오.
다윗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내 원수의 목전에서내게 상을 베푸시고…”
이 말은 단순히음식을 차려 주셨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원수들은 나를 해치려 하지만,하나님은 상을 베푸심으로 말미암아“너는 내 사람이다.너는 내 가족이다”라고 선포하신다는 뜻입니다.
상 앞에 앉게 된다는 것은하나님과 내가한 식탁에 앉는 관계,가족의 관계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떡상이 바로그 은혜를 보여 주는 것이고,오늘 우리가 성찬에서 나누는 이 떡은단순한 떡이 아니라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증거,하나님이 우리를 가족으로 삼으셨다는 선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떡상을 베푸셨다는 것은단순히 음식을 차려 놓으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에서“상을 베풀고, 상 위에서 함께 먹는다”라고 할 때에는한 가족, 한 공동체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하나님의 얼굴을 상 위에,떡상 위에 베푸셨다는 것은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하나님과 함께 먹고,하나님과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공동체로하나님께서 우리를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다윗과 므비보셋의 이야기를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다리를 저는 므비보셋을 불러그에게 큰 은총을 베풉니다.
어떤 은총입니까?
왕의 식탁,왕자들과 같은 상,같은 테이블에서함께 먹게 하는 은총입니다.
이는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너는 내 가족이다”,“너는 왕의 집 사람이다”라는 선언입니다.
요나단과 맺은 언약이그의 아들인 므비보셋에게까지흘러간 것을 우리는 여기서 보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우리를 가리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의 의미는하나님과 우리는한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상을 베푸셨고,그 상에 함께 앉아 먹을 수 있는 은총을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우리 교회 식구야”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말은그냥 밥 한 번 같이 먹으면교회 식구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교회 식구란성찬을 함께 나누는 가족,하나님의 상에 함께 초대된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찬을 함께하지 않는 관계는아무리 밥을 많이 먹어도성경적 의미에서의 “식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 식구”,“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 모든 표현은결국 성찬에서 출발한 언어라는 것을여러분들이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이 떡 위에 놓이는 것을 한번 보겠습니다.
떡 위에는유향이 올려집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주께서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다”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이 향은액체 향이 아니라고체 형태의 향입니다.
액체를 발라떡 위에 고체 유향을 올려 놓고,이 떡은 일주일에 한 번,매 안식일마다제사장이 물리고새로운 떡으로 교체합니다.
그리고 그때그 유향을 함께 태워성전 안에향기로운 향이 가득하게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제의 행위가 아니라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삶이향기로운 예배가 되기를 원하신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가리켜**“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이 떡의 영적인 의미가 무엇인가를 보게 되는데,이 떡이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만찬에서 떡을 먹을 때,아, 하나님께서 이 생명의 떡을 나에게 공급하시는 분이시구나.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헌금을 드려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이 성찬 예식을 통해,이 떡을 통해,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죽지 않는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시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만찬을 행할 때신약의 관점에서는이 떡이 곧 그리스도 예수의 몸이 되지만,
구약 시대 사람들은성소 안의 떡상 위에 놓인 떡을 보면서무엇을 깨달았느냐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시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시내산으로 나아갔을 때,그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시내산은씨를 뿌려 농사를 짓고,결실을 맺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사막과 같은 땅이기 때문에나무를 심어 열매를 얻거나,곡식을 심어 수확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무엇을 먹고 살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만나를 먹고 살았던 겁니다.
그러니까 먹고 사는 문제,공급의 문제는사람의 능력이 아니라하나님께서 친히 책임지신다는 것을하나님께서 이 떡상을 통하여,그리고 성만찬을 통하여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레위기 24장 8절 말씀을 보시면아주 중요한 단어가 하나 등장합니다.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영원한 언약이니라.”
여기서 중요한 말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언약”입니다.
떡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하나님께서“내가 너희를 먹이겠다”,“내가 너희를 책임지겠다”라고 하신 영원한 언약의 표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영원한 언약”**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성찬 예식을 제정하시며“내가 오는 그 날까지 이것을 행하라”라고 하셨지요.
구약에서의 떡상이“영원한 언약”을 의미한 것처럼,신약의 성찬도같은 의미,즉 하나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먹이시고, 돌보시고, 책임지겠다라는 언약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만찬을 행할 때마다이 떡은 단순한 떡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찢기신 몸,
우리를 위한 희생의 몸,
동시에 생명의 떡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를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의미와 연결
우리가 추수감사절에감사함으로 재물을 드린다, 예물을 드린다 말하지만실제로는 무엇을 고백하는 것입니까?
“주님, 이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래서 일부를 떼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전부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떡의 두 번째 영적 의미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의 교제를 기뻐하신다
수요예배나 토요새벽예배에서조금 더 나누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하나님께서는우리를 구원하신 것을정말로 기뻐하십니다.
이해가 쉽게 가지 않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셔야 했고,그 안에는 아픔과 희생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희생을 감수하시면서까지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것을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테이블이 의미하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식탁에 앉아음식을 나누시는 것 같은 그림입니다.
우리가 부모일 때자녀가 집에 오면 어떻게 합니까?
“야, 더 먹어라!”
“이것도 먹어 봐!”
“너 좋아하는 거 준비해 놨다.”
며칠 전부터, 아니 몇 주 전부터무엇을 만들어 줄까 기대하며자녀를 맞이하잖아요.
하나님도 동일하십니다.
우리와 교제하기 위해상(테이블)을 준비하시고,우리에게 생명의 떡을 주시고,우리를 그분의 가족으로 맞아 주십니다.
안 그런 것 같은 모습이신데,제가 제 아내를 보니까 딱 그렇습니다.
아들이 멀리 떨어져서 살기 때문에한번 온다고 하면 집안이 분주해집니다.몇 주 전부터 준비를 합니다.
“얘가 백김치를 좋아하지.”그것부터 시작해서,“김치도 좋아하는데…” 하면서하나하나 다 준비를 합니다.
와서 먹는 사람은실질적으로 잘 모르죠.그저 맛있게 먹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그렇다는 겁니다.
상을 베푸시고,떡을 내어주시고,그리스도의 몸 된 그 떡을 우리에게 주시면서도기쁨으로 내어주시는 하나님.
부모가 자식을 위해미리 준비하는 그 마음처럼하나님도 그렇게 우리를 맞으신다는 뜻이바로 이 떡상에 담겨 있다는 겁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출애굽기 24장 11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손을 대지 아니하셨고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이 표현이 어디에서 나왔느냐면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을 때의 이야기입니다.우리는 보통 모세만 올라간 것으로 알고 있지만,그날은 이스라엘의 70명의 장로들도 함께 산에 올라갑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갔을 때,요한계시록에 묘사된 것처럼하나님의 영광이 청옥 같고, 벽옥 같고,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뵙고,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셨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성경은 그들을 가리켜“존귀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손을 대지 아니하셨다”,즉 죽이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남은 것 자체가 은혜인데,그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먹고 마셨다는 것은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셨다는 뜻입니다.
성막 안에 있는 모든 기구들은다 그리스도 예수를 상징합니다.
단지 상징만 하는 것이 아니라,각각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약으로 넘어오면성소 안, 테이블 위에 진설되었던 떡상이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떡으로 연결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죠.
“나는 생명의 떡이다.”
“누구든지 나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처럼,신약으로 넘어오면 구약의 떡상 위에 놓인 떡은곧 그리스도 예수, 자신의 몸으로 연결됩니다.
“나를 먹어라, 나를 마셔라.”
이 말씀 그대로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떡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신 것이죠.
요한복음 6장 3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내게 오는 자는 결코 줄이지 아니할 터이요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나는 생명의 떡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디에서 태어나셨습니까?베들레헴, 곧 떡집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지명 하나하나에도 다 의미가 있습니다.떡집이라는 그 의미 자체가“내가 생명의 떡으로 이 땅에 왔다”는주님의 선언과도 같은 것이죠.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그 생명의 떡을 먹음으로 말미암아영생을 얻는 하나님의 자녀,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중국의 진나라 시황제,진시황제를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는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렸지만죽는 것이 너무나도 아까웠습니다.그래서 어떻게 하면 늙지 않고,어떻게 하면 죽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불로초를 찾아 나섭니다.
사람들을 보내 불로초를 찾게 했고,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제주도까지 갔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습니까?그는 결국 죽었습니다.불로초를 찾았든 찾지 못했든지금은 역사 속 인물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생명 되신 그리스도 예수를먹고 마심으로 말미암아영원히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요한복음 6장 35절을 보면,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 묻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하늘로부터 내려온 만나를 먹었습니다.그렇다면 당신은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겠습니까?”
그 질문 앞에서예수님께서 하신 대답이 이것입니다.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무슨 표적을 보여 주겠느냐?”라는 질문에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내가 바로 표적이다.”“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모세를 통해 광야에서 내려온 만나를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먹었지만,그들은 결국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내려온 참 떡,곧 그리스도 예수를 먹는 자는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내가 생명의 떡이기 때문에 나를 먹는 자는 죽지 아니하고,그들처럼 죽지 아니하고 영원히 살리라.”
그래서 우리가 떡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갖게 되는 의미는 무엇이냐면,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한다는 의미입니다.
원래는 우리가 죽어야 합니다.그런데 누가 대신 죽습니까?그리스도 예수께서 대신 죽으신 겁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우리도 함께 살아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세례를 받았다는 것은그리스도 예수와 연합되었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대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내가 죽어야 했지만 죽을 필요가 없게 되었고,그리스도 예수께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내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예수와 연합됨으로 말미암아예수께서 살아나시고 내가 그 안에서 살아나는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하늘로 올라가신 하나님께서는처음에는 떡으로 자신의 임재를 드러내셨고,그 떡이 육신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 예수로 나타났으며,이제는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셔서우리 안에 영원히 거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비록 우리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귀로 듣지 못한다 할지라도,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우리를 보게 하시고,우리를 듣게 하시며,하나님의 자녀로 끝까지 붙드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하나님과 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고,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53절부터 58절까지 말씀인데,조금 길지만 앞에 스크린을 보시면서 함께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영생을 가졌고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자,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질문해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생명의 떡이신예수 그리스도를 먹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많은 유대인들이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사람의 살을 먹고 사람의 피를 마실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사람들로부터 식인종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습니다.성찬 예식을 하던 장소가 무덤 근처이기도 했고,그 장면만 보고 사람들은“저 사람들 이상한 의식을 한다”고 오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먹고 마셔라.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는 자는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그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곧 나와 연합된 자만이 영원히 살리라.”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결국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피를 흘리시고, 채찍에 맞으심으로그 몸이 찢기신 그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를 마신다,그리스도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단순한 행위가 아니라온전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찬 예식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성찬 예식을 통하여이 잔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흘리신 피요,이 떡은 나를 위하여 찢기신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우리가 다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이 떡을 먹음으로 말미암아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됨을 알게 되며,
또 이 떡 가운데하나님의 얼굴,곧 하나님의 임재가 있음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이 상에 떡을 베푸심으로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하나님의 자녀로 맞아 주셨다는 그 의미가이 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기까지에는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그 놀라운 희생,그 사랑,그 은혜가 있었다는 사실을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신명기의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신명기에서는 이 떡이 이렇게 해석됩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줄이게 하시며또 너도 알지 못하며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라.”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40일 금식 후 허기지신 예수님께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심으로떡이 곧 말씀을 상징한다는 것,생명의 떡이 말씀으로 변환되는 의미를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떡을 먹는다”는 말은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영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우리가 매일 성만찬을 하는 것은 아니죠.매일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는 것도 아닙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매일 말씀을 내려 주십니다.
그 말씀이우리의 일용할 양식,우리의 생명의 떡이 되어우리를 살리고, 세우고,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 성막에서의 예식과 신약의 성만찬의 차이
구약의 성막에서는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성만찬은그리스도 예수의 피와 몸으로 주어진 은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고린도전서에서 성만찬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우리가 떼는 떡은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우리가 같은 떡을 떼고 같은 잔에 참여할 때우리는 한 몸,하나님의 한 가족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 실제 고린도에서 확인한 “떡을 떼는” 모습
제가 작년(혹은 올해) 그리스를 방문했을 때,고린도 교회 유적을 내려가 보았습니다.그 지하 식당 입구에 들어가는데제 눈에 확 들어온 것이 있었습니다.
큰 동그란 통떡 하나.우리 성찬 때 쓰는 접시만 한 크기였습니다.
그 떡이 잘려진 것이 아니라그대로 덩어리째 놓여 있었습니다.
그 순간 성경 말씀의“떡을 떼었다”는 표현이바로 이렇게 이루어졌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둘러 앉아그 큰 떡을 손으로 찢어 나누고,올리브유에 찍어 먹고,발사믹에 찍어 먹고…
이것이 바로 한 가족,한 공동체라는 상징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한 가족이 되었고,성만찬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한 떡을 떼며한 몸, 한 가족이 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이 떡 위에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유향이 올려져 있다라고 얘기를 했는데이 유향을 성경에는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재물과 희생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향기로운 재물로 하나님께 드렸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는 예수님께서 떡을 비유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는 성전 안에 있는 떡을 의미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향기로운 재물이 되셨다라는이란 표현은 그 떡 위에 있는 향기로운 향을 유향을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동방 박사들이 와서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모약을 드리지 않습니까?
그리고 베다니의 한 베다니의 문능병자 집에 갔을 때도 한 여인이 향기로운 향유 옥합을 곁뜨려서 예수님 발 앞에 부어드리는 것을 보게 되고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내려서 장사 지낼 때도 니고데모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의 장사 지내는 그 육신의 향을 아 이렇게 향기로운 향유를 붙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잘못 우리가 오해를 하시면 아 예수님이 이제 죽어 십자가에 달리시니까 향을 뿌리면서 시체가 부패하는 것을 향기롭게 하려고 하나보다 그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 자체가 이런 향기로운 재물이 되어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구나라는 그 의식입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여러분들이 잘못 알고 계셨다면 이런 것들도 어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향을 바른 것은 또 어 동방사들이 향을 드린 것은 향기로운 재물로 오실 그리스도 예수를 의미하는 겁니다. 어 머리를 풀어서 예수님 발 앞에 향유를 보어 드리고 닦던 그것은 이것은 나의 장사를 준비하는 것이다라고 주님께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장사를 준비할 때 죽어서 뭐 부패하지 않게 향을 바르고 그 의미가 아니라 향기로운 재물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실 그리스도 예수를 의미하는 그러한 의미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결론으로 여기에 출애굽기 25장에 보시면 상위의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어다. 하나님과의 성도와의 교재는 한 번의 교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이 의식을 행함으로 아니면 1년에 한 번이 의식으로 행이 의식을 행함으로 하나님과의 교재가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내 앞에 있게 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또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는 날마다 우리와 교재하는 존재로 함께 하겠다라는 그 의미로 여기에서 지금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정도 말씀을 나누면주의 성찬에서 떡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이제는 분명히 기억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성찬에서 포도주는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그 피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그런데 떡, 곧 주님의 몸에 대해서는“몸이다”라는 개념으로만 지나치기 쉬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떡은하나님께서 임재하심의 표이요,하나님께서 우리와 교제하신다는 표시요,또 우리를 위하여 베풀어 주신 그리스도 예수의 참된 몸입니다.
우리가 이 떡을 먹고 마심으로 말미암아우리는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다시 말해,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찬 예식은아주 가볍게 참여할 예식이 아닙니다.이 예식에 참여할 때,여러분 모두 정결한 마음으로 나아오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세례를 받지 않으신 분들은 성찬에 참여하실 수 없습니다.또 타 교회에서 치리 중에 있는 분들 역시이 예식에 참여하실 수 없음을 공포합니다.
그러나 이 예식에 참여하는 모든 분들은우리를 위하여 향기로운 재물로 희생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기억하며,그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우리가 영생하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감사와 기쁨으로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성찬이형식적인 예식이 아니라,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감사로 참여하는 복된 예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함께 찬송하겠습니다.찬송가 144장 1절과 3절입니다.
분병 위원 두 분은 앞으로 나오셔서테이블 정리를 부탁드립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를 당하셨네…
아멘.
여러분, 추수감사절은 종교적 절기의 마지막,곧 초막절에 해당하는 절기입니다.
1년 동안 거둔 모든 것을 초막에 두고장막에 거하며 고백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찬 예식을 하면서특별히 떡에 대해 나눈 말씀처럼,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존재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만이 참된 양식이라는 고백,그 고백을 가지고오늘 이 성찬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즐거움으로, 기쁨으로, 감사함으로이 예식에 참여하는복된 시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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