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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진 목사 초대 설교 "비전 공동체"



어, 제 얘기를 많이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미 다 들으셨을 거라고 생각이 되고, 한 마디만 말씀드리면 아마로 들어갈 때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혹시라도 잘못돼서 깨면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해 주십시오.”

라는 그런 어, 기도를 하고서 마취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아, 다 끝나고 수술이 다 끝나고도 10시 40분에 끝났다고 그래요.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한 40분간을 깨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해 집사님하고 같이 11시까지 도착을 했었는데, 뭐 거의 12시간 정도 이렇게 됐던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오늘은 어, LA에서 월드 미션 유니버시티 총장님 되시는 임성준 목사님께서 오셨어요. 원래는 제가 애리조나에 말씀 사경회가 예정돼 있어서, “목사님 오셔서 잘됐습니다. 저는 애리조나 가야 됩니다.” 했는데, 우리 성도들께서 너무 간곡하게 못 가게 붙잡는 바람에 제가 다 캔슬하고 못 갔습니다.

아, 그러나 감사하게 우리 목사님과 함께 예배할 수 있게 돼서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우리 목사님 나오실 때 할렐루야로 인사하시고, 또 말씀 가운데 풍성한 은혜 누리십시오. 아멘.

할렐루야. 자, 우리 다 함께 합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저 아까 깜짝 놀랐어요. 천장의 방울 떨어지는 소리 나는데 괜찮은 건가요? 비가 와요? 아, 비가 소리 나는군요.

아까 이민숙 권사님 기도하실 때 “기도는 기적의 통로다” 그런 말씀하셨어요. 어이, 제가 기억력 좋으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저는 비전 공동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사기 21장 25절에 보면,“그때에 이스라엘의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그런 말씀이 있어요. 그때는 사람들이 정말 자유가 많았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그때 이스라엘 역사를 우리가 살펴보면, 제일 비참하고 고통스럽고 전쟁으로 인해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는 시기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했다고 행복한 게 아닌 것 같아요. 꿈이 없으니까 어려움을 당하는 거예요.

근데 느헤미야 2장 17절에서 18절 같은 말씀 보면,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도성에 성벽이 무너진 것을 보고 “그거 다시 싸웁시다”라고 했어요. 그럴 때 온갖 이방 사람들, 주변에서 조롱을 하고 무시하고 그랬지만 한 소리도 참아 듣고, 한 소리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벽을 42일 만에 다 완성했어요.

그때 그분들은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기뻤어요. 왜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그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이렇게 비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 말씀 보면 권사님이 봉독해 주셨는데, 1절을 안 읽었어요. 근데 1절은 뭐라고 시작하냐면 “이 일이 마치매”라고 시작하고 있어요. “이 일이 마치매.” 그럼 이 일이 뭘까요?

31장 1절이 “이 일을 마치매” 그랬으니까, 아마 29장, 30장에 일어났던 일들을 말하는 것 같아요. 그럼 뭐가 일어났을까요? 히스기야가 그 전대 왕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성전이 소홀하게 돼서 제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우상이 온갖 곳곳에 세워진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돼야 된다”라고 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다 말끔하게 정화시켜서 깨끗하게 수리했어요. 고쳤어요.

그리고 제사를 다시 회복했어요. 예배를 회복했어요. 그리고 모든 우상을 다 파괴했습니다. 그런 일이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거예요. 이 일이라는 것이.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어요. 유대인들은 적어도 세 번은 예루살렘에 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그중에 하나가 유월절인 거예요.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그때 유월절에 다 오라고 했어요. 다 와서 성전을 함께 정화하고, 제사를 회복하고, 유월절을 지키고, 우상을 다 부수는 그런 역사를 이루고 이제 다 집으로 돌아가라, 그렇게 히스기야가 명령했습니다.

그럴 때 이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1절 하반절에 그들이 돌아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분들이 돌아가면서 뭘 했겠어요? 돌로 만든 우상 다 부쉈어요. 나무로 만든 상 다 부쉈어요. 산꼭대기에 있는 산당도 다 부쉈어요. 곳곳에 세워진 단도요.

여러분, 저는 이 성경 말씀을 보면서 뭐가 생각났냐면, 옛날에 제가 산에 기도하러 갈 때가 생각났어요. 왜요? 이렇게 냉면하고 보리쌀 조금하고 된장하고 무말랭이 해 가지고 산기도 가잖아요. 그러면 며칠 동안 은혜 받고 막 뜨거워지면 그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내려올 때, 집으로 올 때 그때가 생각나는 겁니다.

73년도 민족 복음화 성회가 여의도 광장에서 있었을 때, 그 밤새도록 철야로 기도하고 날이 밝아서 집으로 돌아갈 때, 그 한강대교·마포대교를 건너면서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그 찬송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가던 그때가 생각이 나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성전을 정화하고, 예배를 회복하고, 우상을 다 파쇄하고, 그리고 내려가면서 그 모든 것들을 다 제거하면서 내려갈 때,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비전이 살아난 거예요. 하나님의 영광과 예배 회복이라는 놀라운 일이 히스기야를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본 말씀을 통해서 잘 아시겠지만, 영적인 부흥이 일어난 거예요.

그런데 제사장들이 이제 제사가 회복되니까 제사장들을 세웠잖아요. 제사장을 세워서 예배를 잘 드리게 했는데, 무슨 문제가 생겼냐면 이 제사장들이 먹을 게 없는 거예요.

대부흥이 일어나고 다들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데, 그 전에는 제사장들이 역할이 별로 없었어요. 왜냐면 제사를 제대로 못 드리니까. 그런데 이제는 제사를 제대로 드리려니까 그분들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제사에만 몰입해야 되는데 생업이 안 되니까 먹을 게 없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려고 열심히 하는데, 그분들이 먹을 것이 없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왕에게 말씀을 전한 것 같습니다.

“저 제사장들이 정말 죽을 힘을 다해서 열심히 성전을 지키고 제사를 인도하는데, 먹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말합니다.“여러분, 저 제사장들을 우리가 도와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제안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온 백성들이 그 말에 동조해서 4개월 동안, 3월부터 7월까지 성전 제사를 위해 필요한 예물과 제사장들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다 쌓았습니다.

그런데 4개월이 지나고 보니까 그 더미가 어마어마하게 쌓인 거예요.

그래서 왕과 지도자들이 그 쌓인 더미를 보고 묻습니다.

“이게 뭐냐?”

그러니까 제사장들이 말합니다.“왕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제사를 위해, 제사장들을 위해 예물을 받으라고 하셔서 백성들이 드렸는데, 이렇게 많이 남았습니다.”

그것이 오늘 말씀의 대부분의 내용입니다.

이렇게 그 무더기가 쌓여서, 그러니까 다 쓸 수가 없을 만큼 너무나 많이 쌓인 거예요. 하나님이 주시는 그 축복의 규모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어마어마해서, 미처 창고를 짓지도 못하고 그냥 쌓아 놓은 풍경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 어머니가 옛날에 우리가 시골에 살 때 이야기입니다. 옛날 시골에서는 교회를 개척할 때 단임목사님을 모실 수가 없으니까, 보통 전도사님들이 주중에는 도시에서 신학교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와서 예배를 인도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그때 경상국도 군로면 석탄동이라는 동네에서 살았었는데, 교회가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 집에서 교회를 시작했어요. 마찬가지로 목사님을 모실 수 없으니까 전도사님을 모셔서 예배를 드렸고, 교회가 조금씩 부흥하니까 전도사님을 계속 모셨는데 사례를 드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매일 성도들이 성의를 모아 곡식을 고르는 모습을 제가 봤어요.

우리는 보리밥을 먹어도 꼭 쌀을 섞어 넣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속으로는 ‘아니, 우리도 쌀밥 좀 먹지, 자기 쌀만 저렇게 드리나’ 그렇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정성을 지금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렇게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려는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그래도 제사는 드려야 된다” 하면서 그렇게 엄청난 역사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히스기야 시대의 이스라엘이 참으로 바람직한 공동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배경으로 오늘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비전 공동체입니다. 비전 공동체인 교회는 비전이 있습니다. 아니,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나라 회복을 위해 큰 비전을 가지고 그 일을 실행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어요. 여러분, 비전이 좋으면 사람들이 동참합니다. 동역자가 생겨요. 그래서 비전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비전은 좋은 비전이어야 해요. 하나님을 위한 비전이어야겠죠.

그 비전에 따라 사람이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비전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시애틀 동양선교회’의 비전이 뭔가 한번 찾아봤어요. 제가 맞게 본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말씀을 사모하며 기도에 응답이 있는 교회”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맞습니까? 네, 아멘.

여러분, 말씀을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도대체 뭐냐는 거예요? 저는 나침반 같다고 생각해 봤어요. 우리가 “어디로 가야 되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럴 때 나침반이 되잖아요. 저는 말씀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죠.“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밝혀 주는 것이 말씀이라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말씀이 우리 삶의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단순히 길만 보여 주는 게 아니에요. 시편 119편 97절에 보면,“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이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은 기쁨의 근원입니다.

말씀을 보면 기쁠 수밖에 없어요. 저도 힘들 때가 있으면 시편 1편, 24편을 그냥 외워요. 그러면 막 힘이 솟아요. 슬픔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쁨이 찾아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는 나침반일 뿐만 아니라, 기쁨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찬송가가 생각나더라고요. “예수와 함께 계시니 슬픔 변하여 기쁨.” 말씀 안에 있으니까 기쁨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을 사모하는 교회가 너무나 귀한 교회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을 받는, 응답이 있는 교회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 말씀을 제가 보니까 이렇게 기록돼 있어요.“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를 하라고,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가 있어야 뭐를 하실 수 있는 그런 분입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만족하시고,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세요. 우리 기도 때문에 이렇게 하시고 저렇게 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 같아요. 왜 그러실까요?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뭐가 필요한지 이미 다 아시고, 그것을 다 준비해 놓으셨어요. 그리고 그것을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신 거예요.

그래서 에스겔 36장 37절을 보니까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니라.”

이 말씀이 무슨 말입니까? 에스겔 36장까지 이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엄청난 시련과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것을 계속 말씀해 오셨어요. 그런데 그 말미에 뭐라고 하시냐면, 예루살렘이 다시 회복되고, 그 땅이 결실을 맺고, 짐승이 새끼를 잘 낳고,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세요.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바로 이거예요. 하나님은 이미 다 예비해 놓으셨고, 그렇게 하실 거지만, 그래도 너희는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는 겁니다.

아멘. 여러분, 저는 이게 기도에 응답받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 예비해 놓으셨어요. 그런데 기도할 때까지 기다리세요. 우리가 “하나님, 그냥 주시지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하십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우리를 만나시는 거예요.

저는 기도를 많이 할까요, 조금 할까요? 많이 하는 것 같죠? 네, 많이 합니다. 목사니까, 자식들 문제 놓고 기도 많이 해요.“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여러분들보다 기도 더 많이 해요. 왜요? 여러분 자식보다 제 자식들이 말을 더 안 들어요. 그렇게 기도하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언젠가 응답하십니다.

돌아보면요, 그 기도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기보다는, 그런 간절한 기도를 저와 함께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셨던 거예요. 그때는 세상 끝난 것 같고, “아, 나는 인생 잘못 살았다” 그렇게 생각할 만큼 절망적인 시기였는데, 하나님은 그 문제가 아니라 이미 다 예비해 놓으시고, 그런 길로 가게 하시면서도 우리를 기도하게 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저는 시애틀 동양교회가 기도에 응답받는 교회로 크게 성장하길 바랍니다. 아멘. 아멘. 그런데 여러분, 이게 잘 안 될 때가 있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제가 찬송가가 생각났어요. 429장입니다.“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여러분, 지금까지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 것만 한번 세어 보세요. 너무너무 많아요. 당장 황 목사님 수술 잘 받으신 것만 생각해 보세요. 이미 응답해 주셨잖아요. 이게 얼마나 큰 증거입니까? 얼마나 분명한 약속입니까?

“기도해라. 내가 이렇게 응답할게.”그리고 우리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신 것이 정말 많아요. 그걸 좀 세어 보라는 거예요. 왜 세어 봅니까? 낙심돼서 기도가 안 나올 때, 다시 기도하기 위해서 세어 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 주시는 분이세요.

여러분, 비전은 다른 말로 하면 기도입니다. 교회가 비전이 있어야 된다는 말은, 교회에 기도가 있어야 된다는 말이에요. 그런 면에서 “기도에 응답받는 교회”라는 시애틀 동양선교회의 비전은 너무나 귀한 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지금보다 갑절이나 더 받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비전 공동체인 교회는요, 동역자가 항상 함께 있습니다. 뜻이 좋은데 같이 돕는 사람이 없으면 그 일을 하기가 어려워요. 비전이 없으면 말할 것도 없이 침체되지만, 비전이 있어도 동역자가 없으면 그 비전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가 하나 있어요. 제가 거기서 일한 사람은 아닙니다만, 한 햄버거 가게 이야기입니다. 리치 스나이더라는 사람이 1948년에 그 가게를 설립했는데, 그 비전이 뭐였냐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다”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음식을 먹는 사람이 건강해야 된다. 왜요? 하나님의 형상이니까요. 그래서 그 가게는 냉동 고기를 쓰지 않아요. 감자도 바로 썰어서 튀겨요. 사람의 건강을 돈보다 더 귀하게 여겨요. 왜요? 하나님의 형상이니까요. 같이 일하는 사람도 귀하게 대우해요. 왜요? 하나님의 형상이니까요.

그렇게 하니까 그 비즈니스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거예요. 비전 하나 때문에 비즈니스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겁니다. 왜 그 비즈니스가 잘되느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비즈니스처럼 일하기 때문이에요. 왜요? 자기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존중해 주니까요.

이런 동역자가 필요한 거예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비전이 세워졌을 때 목사 혼자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같이 도와주셔야 일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동역자는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왜요? 그 동역자를 통해 비전이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윗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을 세우시겠다는 비전은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다윗을 돕기 위해 한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다음 이스라엘의 왕은 다윗이다.” 그렇게 고백한 거예요. 그래서 다윗의 군대에 자원입대를 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아마사라는 특수부대 대장이 30명의 정예 부대를 끌고 와서 다윗의 밑으로 들어왔고요. 모든 가족들이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멀리 있어서 직접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우리도 함께합니다”라는 뜻을 전했고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기쁨과 감사로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요, 그냥 혼자 비전을 가졌기 때문에 된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다윗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다윗을 적극적으로 돕고 세웠기 때문에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을 도우실 것입니다. 당신을 왕으로 세우신 그 하나님께서 끝까지 도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신을 돕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비전을 성취할 때 이 고백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보통 이렇게 말하죠. “목사님, 하나님이 함께하실 겁니다.” 그런데 그 뒤의 말이 빠질 때가 많아요. “우리가 돕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게 빠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되지 않느냐? 아닙니다. 우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은 한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시는 거예요. 아멘.

그러므로 비전이 있는 교회에는 반드시 동역자가 있어야 합니다. 동역자가 있을 때 일이 성취되는 겁니다.

다윗의 하루를 보면 이런 장면이 있어요. 르바임 골짜기에 블레셋 군대가 가득 진을 치고 있었고, 그 너머에 베들레헴이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잖아요. 그런데 그 베들레헴에 블레셋의 군사 기지가 설치되어 있었어요.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다윗을 왕으로 세워 놓고는, 이제 다윗이 블레셋을 어떻게 할지를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었지만, 자기 고향 하나를 점령하지 못하니까 속이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그래서 다윗이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한탄합니다.“누가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의 물을 길어다 나로 마시게 할 수 있다면…”

여러분, 다윗이 정말 목말라서 그랬겠습니까? 그 답답함과 간절함을 표현한 거예요. 그런데 세 명의 용사가 그 말을 듣고 블레셋 진을 뚫고 베들레헴에 가서 물을 길어 와서 다윗에게 가져옵니다.

그럴 때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못합니다. 왜요? 이 물은 목숨을 걸고 길어 온 물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충성을 다한 사람들의 생명이 담긴 물이에요.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봤습니다.“하나님, 저는 이 사람들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 물을 부어 드립니다.“하나님,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비전을 알고 부족한 나를 위해 이 사람들이 목숨까지 바칩니다.”

그럴 때 이 용사들은 확신했을 것입니다. “아, 저 사람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다윗은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후대에까지 남기려고 기록으로 남깁니다.

이걸 오늘날의 상황으로 바꿔서 생각해 보면 이런 비유가 될 수 있겠죠. 어떤 대통령이 북한에서 태어나 남한의 대통령이 됐는데, 늘 통일을 소망하면서 “언젠가 평양의 우물 물을 마셔 보고 싶다”라고 했을 때, 특수부대가 목숨을 걸고 그 물을 길어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옆에 충성된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다윗에게는 그들에 대한 깊은 감사가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비전 공동체는 서로 충성하고, 서로 인정하고, 서로 감사하면서 한 마음 한 뜻을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동역자가 있을 때 비전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여러분, 훌륭한 목사님은 누가 만듭니까? 성도입니다. 저는 한경수 목사님이 훌륭한 목사님이라고 생각해요. 아멘. 그런데 여러분이 더 훌륭합니다. 왜요? 여러분이 목사님을 훌륭한 목사로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세워 주는 공동체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동역자가 되고 서로를 세울 때 그냥 되는 건 아닙니다. 눈물도 있고, 희생도 있습니다.

여러분, 저 집사람도 듣고 있습니다.

그 어떤데요, 저 존경해요. 그래, 그 뜻이 오래가길 바라요. 그런데 오래 안 가요. 왜 그래요? 사람은 다 부족하니까요. 그 마음에 “아, 우리는 서로 세워야 될 존재구나” 하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가는 거예요.

그리고 지나고 보면 괜찮은 사람으로 돼 가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멘.

마찬가지예요. 세워져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다 성장한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공동체에는요, 지도자의 모범이 반드시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제사장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듣고 자기가 먼저 제사의 일부를 내놓았어요. 이 재산을 통해 필요한 데 쓰라고 하고, “여러분도 함께 동참해 주십시오”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습니다.

시애틀 동양선교회 연혁을 보니까 1992년 3월에 설립된 것 같아요. 그때 김건 목사님이 오신 걸 제가 기억합니다. 그동안 교회에 여러 굴곡이 있었겠죠. 제 생각으로도 여러 목사님들이 걱정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주영우 목사님, 조목사님, 이중 목사님, 참 많은 분들이 거쳐 가셨고, 이제 황경수 목사님까지 오셨는데요.

시애틀 동양선교회를 보니까 한글학교도 하고, 홈리스 사역도 하고, 참 귀한 사역을 계속하고 계세요. 그거 쉬운 일 아닙니다. 정말 귀한 일입니다.

저는 홈리스 분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저분들이 제대로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추위에 그대로 노출돼 있잖아요. 냉장고도 없고, 히터도 없고, 텐트에서 생활하는데, ‘저렇게 해서 과연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조금 개인적인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제가 프리웨이를 내려오면 홈리스 분들이 서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때는 줘야지 하고 싶은데 준비가 안 돼 있으면 그냥 지나가게 돼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1불짜리를 접어서 컵홀더에 넣어 놔요. 그러다 보이면 주고, 안 보이면 못 주고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집사람이 “왜 돈을 여기다 꽂아 놓느냐, 사람들이 지나가다 보고 가져가면 어떡하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여보, 이건 내 돈이 아니야. 주인 따로 있어.”

여러분, 뭐든 하려면 전심으로 노력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비전이 있을 때 반드시 모범을 보이는 사람, 솔선수범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리더십이 그래야 됩니다. 그래야 비전이 성취됩니다.

군대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지휘관이 두 종류가 있대요. 하나는 앞으로 밀어 넣고 자기는 뒤로 빠지면서 “돌아오면 죽인다” 하는 지휘관이 있고요. 또 하나는 “나를 따르라” 하고 앞장서는 지휘관이 있대요. 여러분, 어떤 지휘관 밑의 군대가 승리하겠습니까? “나를 따르라” 하는 지휘관의 군대가 승리하죠.

마찬가지입니다. 비전 공동체의 지도자는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역대하 31장 10절을 보시면 이렇게 나옵니다.“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셨으므로 그 남은 것이 많도다.”

여러분, 백성들이 열심히 한 거 맞아요. 그거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었던 마음, 자세, 그 풍성함은 누가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주셨다는 거예요.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으므로 그 남은 것이 많도다.” 아멘.

솔선수범하면 동역자들이 따라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시고 역사하신다는 겁니다. 저는 시애틀 동양선교회가 그런 교회라고 믿고, 더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리더 역할 하는 거 힘들어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목사가 기도 많이 하는 것도 사실 쉽지 않습니다. 저는 직업상 자동적으로 하지만, 여러분은 또 쉽지 않을 수 있잖아요.

제가 어떤 때는 너무 피곤해서 집에 가면요, 집사람이 “집 안 청소 좀 하라”고 할 때가 있어요. 학교에서 일하는 것보다 집에서 청소하는 게 더 싫을 때가 있어요. 토요일만 되면 더 그래요.

어제는 제가 굉장히 기뻤어요. 왜냐하면 청소를 안 했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남편 역할도 힘든 겁니다. 제가 집사람한테 그랬어요.“여보, 나 학교 총장이라서 힘들어.”그러면 집사람이 그러죠.“그건 당신 일이고, 집에 오면 당신은 남편이야.”

네,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 빠질 수 있을 때는 또 너무 기뻐요.

여러분, 어떤 역할이든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내일 집에 가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늘 토요일에 못 한 거.

여러분, 학교도 어려움이 있어요. 저는 어려움이 있으면 그냥 기도해요. 제가 시애틀 동양교회에 참 감사한 것은, 저희가 아프리카 학생들을 위해 후원금을 요청했을 때 목사님께서 흔쾌히 도와주셨다는 거예요.

2년 반 전에 문해 교육과 영어 공부를 위해 후원해 주셨는데, 최근에 그 사역이 마무리되었습니다. 32명의 아프리카 학생들이 영어를 공부했고, 그중에 두 명은 졸업도 하고 사역도 하게 되는 좋은 열매가 맺혔습니다. 교회에서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이거 쉬운 일 아닙니다. 그런데 도와주셨기 때문에 이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도자의 모범이 있어야 비전이 실현됩니다.그리고 비전 공동체인 교회는 항상 비전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 번 비전을 받았다고 해서 그 비전이 자동으로 계속 유지되는 건 아니에요. 그렇죠? 결혼했다고 해서 첫사랑의 감정이 그대로 계속 유지되나요? 그냥 두면 식어 버리잖아요. 그럼 다시 불을 지펴야죠.

제가 젊었을 때 집사람이 “여보, 당신 날 사랑해?” 그러면 “어… 사랑하지.” 그러면 또 묻죠. “어떻게 사랑해?” 그러면 “잘 모르겠어. 하여튼 사랑해.”이건 자격이 없는 대답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확인하고, 계속 리마인드해야 합니다. 비전도 마찬가지예요. 계속 점검하고 새롭게 하지 않으면 침체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비전이 없었던 적이 있습니까? 없었어요. 그런데 그 비전이 희미해질 때가 있는 거예요. 그게 실패한 삶 아닙니까? 그래서 비전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라, 계속 강화하지 않으면 반드시 약해진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예가 바로 다윗입니다. 사무엘상 17장을 보면, 블레셋이 쳐들어와서 이스라엘 군대와 전선에서 대치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쪽, 블레셋은 저쪽에 있는데, 블레셋은 군대도 많고 무기도 좋고, 무엇보다 엄청나게 큰 사람이 하나 나옵니다. 이름이 뭐죠? 골리앗입니다.

이스라엘은 무기도 작고, 사람도 작고, 신체 조건도 골리앗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그러니까 다들 나무 뒤에, 바위 뒤에, 웅덩이에 숨어 있는 거예요. 그 상태로 무려 40일 동안 대치합니다.

그때 누가 옵니까? 다윗이 옵니다. 아버지가 “형들이 전쟁터에서 고생하니 먹을 것 좀 갖다 주고 와라” 해서 음식을 들고 왔는데, 보니까 이스라엘 군대는 다 숨어 있고 골리앗은 나와서 하나님을 모욕하고 소리 지르고 있는 거예요. 다윗은 그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다윗이 말합니다.“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여러분, 다윗의 마음속에는 비전이 분명히 있었어요. 어떤 비전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편이시다. 아멘. 여러분, 하나님은 시애틀 동양선교회의 편이십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아멘.

다윗에게는 이 비전이 분명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비전이 희미해져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나갔다가 당하면 어떡하지? 그럼 도망가야지” 하면서 다 숨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다윗은 나가서 외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물맷돌을 던져 골리앗을 쓰러뜨립니다. 여러분, 그 당시 물맷돌은 특별한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다윗만 쓴 게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도 썼어요. 그런데 다윗은 그걸 사용한 거고, 다른 사람들은 사용하지 못했던 거죠.

맞히기 쉬웠을까요, 어려웠을까요? 쉬웠어요. 왜요? 너무 크니까요. 대충 던져도 맞을 수 있어요. 그런데 거기에 뭐가 더해졌습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더해진 거예요. 아멘.

방향은 얼굴 쪽으로 갔는데, 빗나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정확하게 맞게 하신 거예요. 골리앗이 쓰러지자, 그제야 온 이스라엘 군대가 일어납니다. 마치 자기가 쓰러뜨린 것처럼 일어나서 블레셋을 추격해 전멸시켜 버립니다.

여러분,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비전이 분명했느냐, 분명하지 않았느냐의 차이였습니다.

그러므로 비전 공동체인 교회는 비전을 항상 새롭게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기 전과 후에 군대 수가 늘어난 것도 아니고, 무기가 더 좋아진 것도 아닙니다. 환경은 똑같았어요.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왜요? 비전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아멘. 시애틀 동양선교회를 통해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황경수 목사님을 세우신 겁니다. 아멘.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함께 동역자로 부르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끝까지 책임지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교회 차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생업이 무엇인지는 제가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쉽지 않다는 것만은 압니다.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비전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분명히 달라집니다. 기쁨의 삶이 될 수 있고, 절망의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비전이 있는 공동체,동역자가 함께하는 공동체,지도자의 모범이 있는 공동체,비전을 항상 새롭게 확인하는 공동체,

이 귀한 메시지가 여러분의 삶 속에 큰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시애틀 동양선교회 위에 말할 수 없는 큰 축복으로 이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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