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예배: 가장 작은 곳에서 임하신 임마누엘 예수!
- seattleomc
- Jan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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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예, 메리 크리스마스.
네.혹시 성탄 옷을 안 입으신 분들, 이렇게 살짝 꼬집어 줘도 되죠?네, 저는 그래서 일부러 빨간색도 입고 그랬습니다.
성탄절은 참 기쁩니다.우리가 무엇을 받아서 기쁜 것보다도,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다라는그 사실 자체가 참 기쁩니다.
사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예언은구약 성경 여러 곳에 등장하지 않습니까?
멀리는 창세기부터“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날 것이다”라는 예언이 있고,또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올 것이다,유다 지파에서 다윗의 위를 입고 올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신약에 가까워지면,헤롯이 유아들을 학살할 것과이집트로 피신할 것까지도이미 구약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사야서 7장에는동정녀 탄생에 대한 말씀이 나오지요.“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오시기약 750년, 거의 800년 전에 주어진 예언입니다.예수님이 오실 것이다,그 삶이 어떠할 것이다,이런 내용들이 이미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예수님의 탄생지가 어디가 될 것인지,어디에서 오실 것인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여성탄절 전 4주를 대강 지내는 절기가 아니라,‘대강절’, 곧 강림을 기다리는 절기,예수님의 오심을 고대하며 예배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성탄절이 되면우리 마음에는 기쁨도 있고, 설렘도 있습니다.그런 마음으로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사실 성탄절이 12월 25일이라는성경적 근거는 없습니다.정확한 날짜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있고,교회가 그날을 12월 25일로 정해기념하며 지키기로 했기 때문에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추운 계절에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이 어두운 계절에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소식은우리에게 큰 소망과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라는 말은엄밀히 말하면,하나님 자신이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이 세상 가운데 오셨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임마누엘”,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라고 말합니다.
이 성탄의 사건은우리의 말이나 지식을 넘어섭니다.어떤 말로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동정녀가 어떻게 아이를 가질 수 있는가,이것은 어떤 말로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하나님을 천지를 창조하신 분으로 믿는다면,돌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돌을 떡으로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께동정녀 탄생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동정녀 탄생은아주 큰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다는 사실 자체가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보여 줍니다.
2절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베들레헴 에브라다야,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우리가 잘 알다시피‘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의 뜻은‘떡집’입니다.
그리고 여기 나오는 ‘에브라다’라는 말은‘풍요롭다’, ‘풍성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브라다는 베들레헴 이전에고대에 사용되던 지명일 가능성이 큽니다.예수님은 생명의 떡으로 이 땅에 오셨지 않습니까?
그 생명의 떡은빈약하고 나약한 떡이 아니라,풍요롭고 풍성하여누구나 와서 먹고 누릴 수 있는 은혜가 있다는 뜻으로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지형적으로 보면곡창지대, 풍요로운 지역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그런데 성경은 그 에브라다를 가리켜“유다 고을 가운데서도 가장 작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가장 작은 곳에서,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베들레헴 에브라다야,네가 유다 고을 가운데서 가장 작을지라도”라고 말합니다.
이 예언은 예수님 탄생 당시,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와헤롯에게 물었을 때 성취됩니다.헤롯이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메시아가 어디서 탄생할 것인지 묻자,미가서 5장의 이 말씀을 인용하며“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이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이곳은 야곱이 사랑하던 아내 라헬이 묻힌 곳이며,엘리멜렉과 나오미가 살던 동네입니다.모압 땅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왔고,나오미는 룻과 함께 이곳으로 돌아옵니다.
룻은 보아스를 만나 오벳을 낳고,오벳은 이새를 낳고,이새는 다윗을 낳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다윗이 태어난 지역이며,다윗이 양을 치던 목동의 땅이기도 합니다.풍요로운 지역이었기 때문에양 떼를 치기에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헤롯 왕 때,로마 황제가 천하 사람들에게각자의 본적지로 돌아가 호적하라고 명했을 때,요셉도 다윗의 족속이었기 때문에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오게 됩니다.그리고 이곳에서 마리아가 해산하고예수님께서 탄생하십니다.
미가는 농촌 출신 선지자입니다.당시 사회적으로 약한 계층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이사야가 왕궁에서 말씀을 전했다면,미가는 농촌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미가가 활동하던 시기는이스라엘이 거의 멸망 직전의 상황이었습니다.북쪽의 앗수르가 언제든 침략하려 내려오던 때였고,실제로 그 나라가 침공을 받아무너져 가던 시기였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서로 돕고, 서로 격려하면서 이 위기를 탈출하면 좋을 텐데,그 당시 사회는 부패가 극심하고, 부패가 만연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우리কে 구원할 새로운 왕이 왔으면 좋겠다.”“우리কে 구원할 메시아가 왔으면 좋겠다.”이런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서 가만히 보면오늘 말씀 중에 “내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라는조금 아리까리한 표현이 있습니다.
여기서 “내게서”라는 말은 베들레헴에서라는 의미이고,“내게로”라는 말은 하나님께로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이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냐 하면,메시아가 이 땅 가운데 오실 때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실 것이라는 의미가여기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부터 하나님께로,베들레헴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예수님께서 그 뜻을 따라 이 땅에 오셔서우리를 대신해 속죄양으로 죽으신 이후에하나님께로 영광이 돌려간다는 의미가“내게서 내게로 나오리라”라는 표현 속에 담겨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느냐 하면,십자가의 방법으로 그 뜻을 성취하십니다.이 말은 곧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할속죄양으로 오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는아까 다윗을 묵상했던 것처럼전형적으로 양을 치는 곳입니다.목초지가 많기 때문에양을 치는 지역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곳을 보면,고대에 양을 치는 사람들이 망대를 세워위에서는 혹시 강도나 도둑, 혹은 짐승들이 오는지 망을 보고,밑에서는 양을 기르는 구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 앞의 사진을 보시면—창세기를 보시면 이렇게 말합니다.
“라헬이 죽어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야곱이 라헬의 묘비를 세웠더니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장막을 쳤더라.”
여기 “에델 망대”가 나오는데,이 사진이 에델 망대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전형적으로 떠올리는 ‘구유’의 장면과는조금 큰 차이가 있죠.
이것이 에델 망대입니다.다시 한 번, 다다음 사진을 보여 주시죠.이것이 허물어지기 전의 모습입니다.
허물어지기 전에는 이런 형태였습니다.위에서는 목자들이 강도나 도둑, 짐승들이 올까 지키고,밑에서는 안에서 양 떼를 치는 곳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음 장을 보시면,미국 사람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그런데 의외로 우리나라 사람들은에델 망대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에델 망대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이냐 하면,양 떼의 망대라는 뜻입니다.양 떼를 이곳에서 길렀다는 것이죠.
그런데 어떤 양 떼를 길렀냐 하면,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러 갈 때제사용 양을 이곳에서 구입해서그 양을 들고 예루살렘으로 가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순례자들이 이곳에 들러강보에 싼 어린 양들을 데리고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던 곳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구유에서 탄생하셨습니다.우리가 흔히 잘못 이해하는 것은“마구간에서 태어났다”라는 표현인데,당시의 마구간이라는 개념은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물론 구유가 있기는 하지만,소와 양을 먹이는 구유에서예수님께서 탄생하셨던 것이죠.
그래서 미가서 4장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너 양 떼의 망대여…”이것이 에델 망대라는 뜻입니다.“딸 시온의 산이여,이전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내게로 돌아오리라.”
여기 앞의 사진을 보시면옛날 구유는 돌로 이렇게 깎아서 만듭니다.
왜 돌로 깎아서 만들었느냐 하면,제사 지낼 때 제사용 어린 양들이다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넘어지거나 부딪혀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아예 넘어지지 않는 돌로 만든 것입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면이런 식으로 깎아 그 안에 여물을 넣고, 물을 넣어양이나 소들이 와서 먹게 했다는 것이죠.
아기 예수님이 강보에 싸여바로 이곳에 놓이신 것입니다.
여러 번 여러분께 말씀드렸지만,왜 마리아가 아기가 태어났을 때자기 품으로 안아야 할 것 같은데강보에 싸서 구유에 놓았을까요?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세마포로 싸여 새 무덤에 안치되었다고 하지 않습니까?마찬가지로 당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는제사용 어린 양이 태어나면강보로 싸는 문화적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한번 보십시오.아기 예수를 강보에 싼다는 것은이런 모습으로 싸는 것입니다.이것이 유대 전통에서 강보를 싸는 모습입니다.
강보에 싸서—우리 같으면 어떻습니까?어머니들은 품에 안고 있을 텐데,그렇지 않고 구유에 놓였다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났을 때,목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으니,가서 경배하라.”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너희가 가서 구유에 누워 있는 아이를 보게 될 텐데,그것이 너희에게 표적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목자들이 가서강보에 싸여 구유 위에 놓인 아이를 보면서그들에게 주어진 메시지는 무엇이었겠습니까?
“아, 이분이 우리가 그토록 고대하고 기대하던 메시아구나.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속죄양으로 오신 구주이시구나.”
이것을 목자들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이것이 ‘표적’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죠.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는 순간,목자들은“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메시아를 보내 주셨구나.그 메시아는 십자가를 지실 메시아요,고난당하실 메시아요,죽음과 희생을 통해 우리를 속죄하실 메시아로 오실 분이구나.”라는 사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메시아에 대한 사실은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본문 2절 하반절을 보시면이 메시아에 대해 또 이렇게 말합니다.“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 있느니라.”
그의 근본, 그의 태어나심,그의 원래 계셨던 곳, 그의 기원은아득한 옛날, 태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성경 번역,표준새번역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그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근본은상고, 옛날에 있고,그의 근본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하나님이신 그 메시아가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사실을미가 선지자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에서는“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라고 말하면서,그 말씀이 우리와 함께하셨고,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라고 요한은 기록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시고,하나님 자신이우리와 같은 육신의 모습을 입고우리 가운데 오신 사건,그것이 바로 성탄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3절을 보면,당시 사람들의 상황과 마음이 어떠했는지를이렇게 표현합니다.“그러므로 임신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그들을 내버려 두시겠고,그 후에는 그의 형제 중 남은 자가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라.”
여기서 “내버려 두시겠다”라는 말은‘방치하시겠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는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이고,하나님께서 다른 나라를 사용하셔서그들을 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상태를잠시 방치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곧 고난 가운데로 백성들을 두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언제까지냐 하면,“여인이 해산할 때까지”입니다.
이 부분은 해석이 여러 갈래로 나뉩니다.어떤 사람들은이 여인을 동정녀 마리아로 보아마리아가 해산할 때까지라고 해석하기도 하고,또 어떤 학자들은여인이 해산할 때 극심한 고통을 겪듯이,오랜 시간의 고난 이후에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실 것이라는상징적 의미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느 해석이 정확한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분명한 것은하나님께서 일정한 기간 동안이스라엘을 고난 가운데 두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반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그 후에는 그의 형제 중 남은 자가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라.”
‘남은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부르실 때,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실 때,어떤 방법으로 부르시느냐 하면,십자가의 방법으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십자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을 부르시되십자가를 지난 이후에 우리를 부르시며교회로 나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흘리신 피로 사신 교회로 말미암아,십자가를 통과한 사람들을우리 가운데 새롭게 부르시는 것이죠.
미가 당시를 생각해 보면많은 사람들이 흩어졌을 것입니다.전쟁의 소식이 있고,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가야 했으니정서적으로 얼마나 불안정한 상황이었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각 나라로, 각 지역으로 흩어져 버립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는“다시 모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다시 모으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십자가의 방법으로 교회를 세우시고,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하나님께 찬송하는 자들로다시 모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의미가 바로3절에서 나타나는 메시지입니다.
4절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4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서서 목축하니,그들이 거주할 것이라.이제 그가 창대하여땅끝까지 미치리라.”
세상의 방법,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세상의 권력자들이 다스리는 통치의 방식과그리스도가 다스리고 통치하는 방식은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을 가진 대리자로서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다스리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눈먼 자가 눈을 뜨고,앉은 자가 일어나고,고난 속에 있던 사람들이다시 소망을 얻고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죽음도 물러가지 않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다스리시는 메시아,그 통치자는 가는 곳마다어둠이 물러가고,슬픔이 사라지고,절망이 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으로우리를 다스리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미가 당시의 상황은얼마나 암울했겠습니까?
사회적으로는 부패했고,소망도 없었고,희망도 없었습니다.돈 있는 사람들과 고관대작들은 착취했습니다.
성경은 이 당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사람을 사고파는 데신발 한 켤레 값으로사람을 사고팔았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없는 사람들은얼마나 고난 가운데 있었겠습니까?
정치적으로도 평화롭지 않았습니다.주변 나라들은호시탐탐 침략하려는 상황이었고,백성들, 특히 낮은 자들의 입장에서는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이었겠습니까?
그래서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이 상황을 타개해 줄 분,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줄 메시아를그토록 고대하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는세상의 방법으로 다스리는 분이 아니라,하나님의 방법으로,긍휼로, 사랑으로, 인자하심으로,위로하심으로 다스릴 분이라고미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신가장 큰 이유가5절에서 분명히 등장합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오.“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아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도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가장 중요한 이유,가장 큰 이유는평강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평강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하나님과 끊어졌던 관계를회복시킴으로 말미암아주어지는 평강입니다.
이 평강은돈이 많아서 누리는 평안이 아니고,건강해서 누리는 평안도 아닙니다.우리 심령의 근본적인 상태를평안하게 하시는 평강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죽음의 문제로 인해,질병의 문제로 인해얼마나 낙심하고 좌절합니까?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우리에게 얼마나 큽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끊어졌던 관계를회복시키심으로 이루어지는 평강을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평강은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희생당하시고,속죄의 제물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이루어내신 평강입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다”라고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의 가장 중요하고가장 기쁜 소식은 이것입니다.예수님이 오신 목적은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회복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없이는하나님과 우리 사이가하나 될 수 없고,회복될 수 없다는 사실을지금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전쟁이 끝나면 평화가 온다.물질이 있으면 평화가 온다.건강하면 평화가 온다.
그러나 그런 평화는일시적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참된 평화는영원한 평화입니다.
십자가 안에서,십자가의 방법으로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평강이이곳에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생명의 떡으로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보고 경배한 것이 아니라,아기 예수를 통하여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구원주이신 메시아를 그 가운데서 본 것이죠.
그래서 그 먼 곳에서,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경배를 드린 것입니다.
성탄절은 아기 예수 자체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다시 말씀드리면하나님과 끊어진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하여육신의 몸을 입으시고,희생 제물이 되셔서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성탄절은그 예수님을 찬송하는 날입니다.
이 성탄의 은혜,이 성탄의 기쁨을여러분들이 마음껏 누리는복된 성탄절이 되기를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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