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22:15~22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 seattleomc
- Jul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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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은 마스데 마더스데이입니다.
옆에 분들과 한번 인사 한번 하시죠.
영어로해 저희 교회는 >> 남자들이 되게 신나하시는 거 같아요.
남성 성도분들이 많이 안 계셔 가지고 셀프 축하를 알고 그랬더니 그래도 어 여러분들 즐겁고 어 기뻐하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 어머니로 살아간다는게 어, 어떤 건지 여러분들이 잘 아실 거고 한 사람의 수고와 한 사람의 희생과 한 사람의 공사를 통하여서 어, 한 영혼이 살아나는 그 것 아, 마더스데이에 우리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는 아, 메시지가 아닐까 이렇게 아, 생각이 됩니다.
어 항상 날씨가 좋다가 이렇게 주일 오늘게 날씨가 좋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는 건지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이탈을 들을까 말까 많이 고민을 어 했는데 그냥 안 들고 지내는 것도 괜찮겠다 아 생각이 됩니다. 그 대신에 교재 하실 때는 아 따뜻하게 드리겠습니다.
히터를 세게 튼튼다는 얘기죠. 어, 다음 주 어부터 저희 총회가 있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회의하는 겁니다.
>> 그냥 제대로 잘 섬기고 그냥 놔둬도 잘하는데 굳이 모이자 또 인원하자 또 결정하자 이런 것들이 굉장히 별로 안 좋은데 어쩔 수 없이 참 가기 싫습니다. 입장으로서는 어 그런데 어 가지 않으면은 또 많은 사람들에게 어 유익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에 어 부득이 어 가게 되는데 여러분들이 가는 동안 아 아무 일 없이 잘 가져오도록 기도해 주시고 아 특히 어 요즘에 그 한타 바이러스로 인해서 많은 분들이 이제 염려하고 또 어 어 이끌어가는 임원들에게 또 질문도 들어보고 아 계속 진행되는 것이냐 뭐 이렇게 우리가 한번 코로나 팬데믹 때 너무 깜짝 놀라서 이제 작은 마음도 스스로 조심하는 그런 일들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서 무릎으로 오시는 질문하시는 분들에게 어 염려 없다라고 이렇게 말씀을 했는데 아 우리 그 신앙인들이 가장 망쓰려 하는 부분인 거 같아요. 세상과 믿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어 방황하는 곳은 어 굉장히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은 세상의 방해가 심하고 또 세상의 방법대로 살아가려면 아 믿음이 한없이 낮아지기도 하고 어 그럴 것 같습니다.
믿음으로 이기면 되지 이렇게 말을 하다가도 막상 딱치면 그것이 아닌 거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 속에서 생각할 것은 가이사에게 새를 바치는 것이 가하냐 불가하냐라는 아이 질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기로 함정에 빠뜨리기로 작정하고 시를 거는 아 사건입니다.
어 이후로도 이제 연속해서 물어오는 그러한 질문들이 있는데 아 나중에는 이제 부활이 없다, 천사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그 사두개인들이 형제가 다섯이 있는데 다 죽었다.
네. 천국에 가면 누구 아내냐라는 질문과 또 율법사가 나와서 예수님께 어느 계명이 어느 율법이 가장 큰 것이냐라는 이러한 질문요 세 가지의 질문이 연속해서 예수님께 주어지게 됩니다. 아, 이러 질문들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냐면은 당신이 정말 메시아라는 그러한 것이고 또 예수님께서 메시아 되심을 행하시자 많은 기적들이 일어나고 눈먼자가 눈을 뜨는 일이며 앉은 자가 일어나는 일이며 또 가난한 자가 아 그 가난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운동병자가 깨끗해지는 일이며이 모든 메시아 대신 행들을 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다는 겁니다. 그러니까는 자기네들은 아 바리새인들은 종교 지도자들은 지금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이러한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네들은 인기가 별로 없는 겁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시기와 질투가 가득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저 예수를 죽일까? 이런 공물을 어 일론을 이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있는이 말씀도 어 사실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결론이기 때문에 이렇게 깜짝 놀랄 만한 그런 일이 아니고 또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도들이 낙세 문제 이런 것들에 대해서 잘 정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충격으로 받았지는 않습니다. 근데 한국이 한 때는 정치적으로 굉장히 큰 소용돌리 속에 임졌을 때 정권에 순종하는 것이 맞는 것이냐? 그 그리스도인으로서 [목을 가다듬음]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순종하는 것이 맞는 것이냐 아니면 거부하는 것이 맞는 것이냐 이런 갈등이 있었던 적이 어 있습니다. 아 그런데 오늘은 어이 문제가 그렇게까지는 심각하게 오지 않는 것을 우리가 이미 결론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죠.
15절 말씀을 여러분들이 한번 보시면 15절에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아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여기 바리새인들은 무신론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거에 대해서는 바리새인들을 따를 만한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이 사람들은 종교적이었고 또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데 앞장섰고 어 이들의 신앙 생활을 가만히 살펴보면 바리새인이라는 그 말이 원래는 이제 불리지의자 분리한다.
세상과 분리하고 또 신앙을 멀리하는 사람들과 분리해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심리하는 그러한 집단이다. 이런 것들을 내세우기 위해서 붙여진 말들.
그런데이 바리새인들 하면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음식하죠. 그리고 [목을 가다듬음] 또 하루에 세 번씩 꼭 기도하죠.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은 덥죠.
그러니까 현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말할까?
아, 저 사람은 정말 예수를 잘 믿는구나. 저렇게 믿어야 말구나.
이렇게 그 말을들을 사람들이죠.이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다르게 봤습니다.
어떻게 다르게 보았냐면은 그들의 겉모양과 그들의 성방이 다른 것을 꿰뚫었다는 것이죠.
번 모양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수많은 사람들이 칭찬하게끔 그 말을들을 수 있는 신앙적인 행위는 누구보다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니까는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겁니다. 왜? 우리들도 주변에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을 보면 참 재수다 이런 얘기들 많이 하지 않습니까? 저 사람하고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말과 행동이 다른 신앙과 그 신앙을 삶에 실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는 예수님의 이러한 질체 아 지난번에도 우리들이 함께 묵상을 했지만 바리새인들의 행위를 바라보면은 입만 무성한 겁니다.
실질적으로 하나님께서 오히려 하시는 열매에 입소서는 전혀 맺지 못하는 그러한 사람들이었고 자신들은 누구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들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던 그러한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책망을들은이 바리새인들이 가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이들이 함께 모여서 상의를 하는데 어떤 상의를 했냐면은 어떻게 하면 예수를 올무에 걸까 그래서 그걸로 함장을 빠뜨려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잡을까 아니라 모임을 이들이 가졌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 누구와 함께 예수님께 이들을 보내냐면은 헤롯 당원들과 함께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여기서 아주 재밌는 그런 단어가 등장을 하는데 헤롯 당원이라는 그러한 말입니다. 헤롯 당원이라는 이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면은 예수님 태어나실 때에 이제 헤롯 왕이 등장을 하죠. 그리고 또 예수님이 죽으실 때도 에롯 왕이 등장을 하죠.
분봉왕으로 등장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던 때에 통치하였던 헤롯 왕이 죽자 헤롯 가문에서 왕을 세워야 된다라는 이런 헤롯 왕을 수종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그게 등장을 했다는 겁니다. 왜 그러냐면은 [웃음] 그 사람들과 함께이 정치적인 어떤 권력을 잡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이들이 해롯 당원이다라는 이러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해롯 당원들은 어 우리나라도 이제 경험한 그러한 일이지만 일제시대 때 일제에 구역했던 그런 사람들을 내노라고도 얘기를 하고 일제의 압잡이라고도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아, 물론 이제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 나름대로의 어떠한 변명이 되고 그 사람들 나름대로의 할 말들은 있겠지만 역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는 민족을 대반한 그런 사람들로 다윗이 찍겠다는 것이죠. 헤롯 다몬이 꼭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헤롯 왕에 붙어서 로마의 정부에 붙어서 어떻게 하면 유대인들을 벌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할까 이런 생각만 안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이 해 방어들과 함께 가고 있는 바리세타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냐면은 철저하게 민족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학 쉽게 이렇게 생각을 하면 될 거 같습니다. 일제 앞자리들과 독립군들과 함께 보의를 해서 예수님을 찾기로 잡다겠다 이러면 이해가 조금 빠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민족주의자들과이 바리새인들과 헤롯들이 함께 잠당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물과 기름이 만난지 못하는 것처럼 헤롯과 바리새인들은 도저히 사기를 내야 사귈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이 분파가 있죠. 어 그 조그만한 땅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이제 분파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사두개파라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고 바리세파라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고 뭐 여러들이 많이 이렇게 등장을 합니다. 근데 이제 그 가운데서도 극단적인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독립운동을 하되 우리는 뭐 문서로다가 팬으로다가 고소를 해서 많은 사람들의 감정에 아 이쪽으로 돌아오게끔 유도하자라는 이런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아니다 우리가 당한만큼 저들에게 대로 줘야 된다 해서 극단적으로 무기를 들고 싸웠던 그런 사람들도 있는 것처럼이 헤롯 당원들 가운데서도 이런 사람들이 많았고 또 바리세파 중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는 어 그 한 가지 예를 들어서 유다라는 그런 사람이 나중에 이제 중장을 하게 되는데 우리는 로마 정부를 섬길 수가 없다.
그러니까 두 종류의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서서 지금 묻고 있는 거죠. 내라고 해도 문제가 되고, 내지 말라고 해도 문제가 되는 그런 상황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어떤 사건이 등장하게 되냐면, 간음 중에 붙잡힌 여인의 사건이 등장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와서, “예수님, 우리가 이 사람을 현장에서 붙잡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예수님께 묻죠.
이때도 예수님이 이제 올무에 빠진 듯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러니까 어른으로부터 시작해서 아이들까지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그들이 손에 있는 돌들을 다 내려 던지고 그대로 돌아갔더라라고 해서 그 상황이 원만히 무마되는 그런 것들을 우리들이 보게 되는데, 오늘 여기에서 보면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특히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이 문제가 참 중요했던 것은 무엇이냐면, 지금도 당시에 사용되어졌던 어떤 기념주화와 주화들이 발견됩니다.
이 주화들을 여러분들이 직접 보시려면 영국의 대형 박물관에 가서 보시면 될 겁니다. 다만 이 당시에 사용되어 있던 주화인데, 여기에 뭐라고 있냐면 가이사의 그림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밑에 뭐라고 쓰여 있냐면, “신의 아들 가이사.” 그리고 또 “신의 제사장 가이사.” 이렇게 쓰여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바리새인들로서 이 동전 하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로마를 인정하는 것이고, 가이사가 신의 아들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가이사가 제사장 됨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인 겁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미국 돈들을 다 들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보면 뭐라고 쓰여 있어요? “In God We Trust” 이렇게 쓰여 있나요? 그렇게 쓰여 있죠.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이렇게 쓰여 있잖아요. 그것처럼 여기도 그렇게 썼다는 겁니다. 가이사가 신의 아들 가이사라고 썼다는 것이죠. 그리고 신의 제사장이라고 이렇게 썼다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이처럼 로마가 다스리는 그런 때였기 때문에 로마의 화폐가 통용되는 그런 때였던 겁니다. 그런데 21장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시면서 돈 바꾸는 자들을 다 몰아냈죠. 이 데나리온을 성전세로 받을 수가 없는 겁니다. 가이사의 형상이 있고 그런 말들이 쓰여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돈을 바꿔 준 거죠. 이스라엘 사람들이 쓰는 세겔로 이것을 바꾼 겁니다. 돈을 바꿔 주는 그러한 일들이 여기에서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돈을 바꿔 줬으면 그 돈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 이 돈이 그만큼 부정하고 또 신의 이름을, 하나님의 이름을 욕먹이게 한다면, 돈을 바꿔 줬다면 이 돈들을 다 불로 태우든지 없애든지 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자기네들은 이 데나리온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이게 재물이니까 이거 버리지를 못하는 겁니다. 돈을 바꿔 주는 것이죠.
그러니까 얼마나 참 아이러니한 그런 일들이 여기서 지금 막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 앞에 이 질문을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인 거죠. 어떻게 말을 해도 걸릴 만한 그런 문제였던 것이죠.
이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합법적인 것이냐, 아니면 불법적인 것이냐, 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이 문제를 막 따지고 있는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다른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이 문제를 거부할 수도 없고 이 문제를 받아들일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한쪽에서는 이것을 바치자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거부하자라는 이런 문제가 예수님 당시에는 굉장히 심각하게 대두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으로서는 이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게 대두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가 우리의 삶에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얘기를 하시냐면, 18절을 보시면 이 사람들의 의도를 예수님께서 이제 알게 되시는 거죠.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그들의 악함을 아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여러분들, 우리들이 잘 알다시피 창세기에 보면 사탄이 아담을 유혹을 하는데 무엇으로 유혹을 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혹합니다. 마귀가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기 전에, 40일을 금식하시고 시작할 때 무엇으로 예수님을 공격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격을 받으라는 겁니다.
물론 그것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돌려서 그것을 물리치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우리가 이런 올무에 빠질 때가 참 많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어요. 어제 토요일 새벽에 우리가 잠깐 말씀을 나눈 적이 있는데, 이삭이라는 인물을 여러분들이 아실 겁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이삭 때에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 가뭄이 닥친 그런 때가 왔습니다.
그러니까 팔레스타인 지역에 가뭄을 맞이한다는 것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 겁니다.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의 타격이냐? 이들이 이제 목축업을 하는 그러한 사람들이었지 않습니까? 농경업을 하는 그런 문화도 동일하겠지만, 비가 내리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우리 어렸을 때 그런 일들을 많이 봤어요. 비가 내리지 않으면 꼭 왕의 책임이다. 그래 가지고 왕이 비가 내리게끔 기도하고 그런 것들을 우리들이 역사서에서 많이 봤지 않습니까? 비가 내리지 않아 가지고 기우제를 지내는 것을 저는 많이 봤습니다. 어렸을 때 여러분들도 아마 많이 봤으리라고 생각을 하고, 이처럼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친히 노하여 내리지 않는 것으로 고대 사람들은 생각을 했다는 거죠.
그런데 이 상태에 이 팔레스타인 땅에, 목초지가 없는 그 땅에, 척박한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나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삭이 어디로 내려가게 되냐면 그랄이라는 곳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지금의 가자 지구를 이야기하죠. 그러니까 블레셋 그 지역으로 내려갑니다. 목적이 뭐냐? 애굽 땅으로 가려는 목적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발걸음을 막습니다. 가지 마라. 내가 너에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그 발걸음을 되돌리신 겁니다. 이 그랄이라는 지명의 뜻이 뭐냐면 회색지대라는 그런 뜻이 있습니다. 회색지대. 그러니까 검정색도 아니고 하얀색도 아니고 중간지대라는 그런 의미가 있는 거죠.
이 중간지대는 하나님이냐 세상이냐라는 것의 중간지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이런 상황을 만났다고 한번 가정을 해 봅시다. 비가 며칠 동안 내리지 않아 가지고 완전히 밭이 다 말랐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최소한 먹을 것을 구하려고 우리는 얼마든지 애굽에 가서 구하려고 내려가지 않습니까? 이게 사람들이 당연히 살아가는 그런 것이죠.
그때 하나님 말씀이 들렸다는 겁니다. 가지 마라. 내가 너에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얼마나 그 속에서 우리들은 갈등을 하겠습니까? 하나님, 이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맞습니까? 내가 한 세 번 정도 확인을 해 보고, 세 번째 이게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가 확실히 믿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이 정도는 우리들이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가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지시한 곳으로 가라라고 얘기를 하자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우물을 파니까 파는 곳마다 물이 쏟아지게 되는 거죠.
블레셋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자 이삭을 시기해서 그 우물을 또 메꾸고, 또 다른 곳으로 이동을 시키며, 또 그곳에서 물이 솟아나고, 이것을 무려 일곱 번이라 합니다. 그래서 이삭은 평생 일곱 번의 우물을 판 그런 사람입니다.
지금은 아주 좋은 장비들이 있어 가지고 지금도 뭐 아프리카 땅에 우물을 파 줍시다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좋은 장비들이 있어 가지고 뭐 하는 거야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고대 사회에 무슨 장비가 있었겠습니까? 기껏 곡괭이하고 삽밖에 더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삭이 자기도 다른 것을 메꾸는 그런 사람들과 다투지 아니하고 떠나고, 또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으로 가서 땅을 파고 물을 얻고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지금 가이사와 하나님 나라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문제가 바로 이런 갈등인 겁니다.
하나님께 속해야 되는 것이냐, 아니면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아가야 되는 것이냐, 이런 심각한 문제가 이 질문 속에 담겨져 있는 겁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그런 백성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세금을 내야 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우리를 보고, 우리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된다는 그러한 주장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로마 정부로부터 정복을 당해서 그들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그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 현실 속에서 우리가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러면 아마 진멸을 당하리라고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이게 겉모양으로만 나타났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이었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데나리온을 세겔로 바꿔 주면서 거기에 대한 환율을 적용해서 이익을 챙겼고, 그 데나리온을 이들이 신의 형상이고 신의 말이 쓰여 있다 해서 거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재산을 축적하는 그러한 일에는 이들이 더 편안함이 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겉모양과 속모양은 굉장히 달랐던 것을 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들의 의도를 알아차리시고,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라는 그 얘기를 거기서 하고 계신 것이죠.
21절 말씀 여러분들 한번 보세요. 21절을 보시면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이렇게 예수님은 이 상황을 모면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쳐라.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라는 이 말을 이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80년대에 혼란스러웠던 그 정치적인 문제가 우리나라에도 있었지 않습니까?
그때 많은 사람들이 이 정권에 우리들이 순종해야 되느냐, 이 문제를 놓고서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였었지만, 아마 신학교에서도 이 문제가 굉장히 크게 대두가 됐었습니다.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투쟁을 해서 이 정권에게 순종할 수 없다라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니다. 아무리 악한 정권이라 할지라도 세우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로마서와 베드로서를 갖다 대고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신 것이다. 그래서 순종해야 된다. 이런 걸로 굉장히 사회적인 갈등이 일어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어라.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주어라”라는 이 말씀을 하시는데,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 조금 생각을 해야 될 것은 뭐냐면 여기서 바치라라는 의미가 있는데요. 하나님께 바치라. 가이사에게 바치라.
바치다라는 의미가 어떤 의미가 있냐면 그들에게 넘겨 주어라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친다는 것은 세금을 거둬서 그대로 바치는 이런 의미보다, 가이사의 것이기 때문에 가이사에게 그냥 넘겨 줘라라는 이런 의미가 더 많다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여러분들, 빚을 진 사람들은 우리에게 책임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돈을 빌려 준 사람이 이 사람에게 와서 “너 내게 빌려간 것 갚으라” 그러면 응답할 책임과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것을 되돌려 준다고 얘기를 할 때 가치가 이런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이사에게 너희들이 빚을 졌느냐? 그럼 가이사에게 되돌려 주어라. 하나님께 너희들이 빚을 진 적이 있느냐? 하나님께 돌려드리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문제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어려운 내용으로 되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에게 이런 의무가 있으면, 당연히 우리가 이 채무를 졌다라면 그것을 갚을 그러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죠. 그것을 갚으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예수님께서 이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을 이끌고 예수님의 말에 올무를 놓으려고 했던 사람들을 재치 있게 이 답변으로 넘어간 것 같지만, 예수님께서 하시는 그런 말씀은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구분하라라는 의미로 우리들이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세속적인 거라면 너희들이 당연히 세속적인 것에다가 그것을 주어야 되고, 이게 거룩한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라면 거룩한 모습으로 너희들이 당연히 돌려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을 보시면 여러분들, 초대교회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을 교회 앞에다 내놨습니다. 자신들의 밭도 팔아서 내놨고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돈도 이렇게 내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에 근거해서 되는 것이라기보다도, 이들이 초대교회에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생각을 하다 보니까 가치를 생각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세상적인 가치에서의 어떤 물질보다도 하나님 나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그 가치가 이들에게는 더 소중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없어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것이 있다라는 이 생각 속에서 성도들은 가지고 있는 재물들을 다 교회 앞에 내는 거고, 그것으로 인해서 서로 통용을 한 것이죠.
그러니까 가이사에게 드리는 것, 세상에게 내어놓는 것은 지금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가이사, 세상에 내어놓는 이 차이를 여러분들 조금 이해하셨으리라 생각이 되는데, 세상의 가치보다 하나님의 가치가 더 크다. 너희들이 세상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그러면 세상에 돌려줘라. 그러나 하나님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라면 하나님께 이것을 돌려드리라는 이 답변의 의미가 여기에서 담겨져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세상의 권세보다도 하나님 나라의 권세, 우리가 영원한 그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될 그 권세가 우리들에게는 더 소중하고 더 귀하다는 그 답변으로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을 우리들이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의 삶이 아까 이삭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드린 것처럼 항상 이 갈등 속에서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를 안 믿으면요, 이 갈등이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세상이냐 하나님이냐, 이 중간지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자니 내가 세상에서 많은 손해를 볼 것이고, 내가 이 세상에서 성공을 하게 된다라면 내 신앙적인 부분에 있어서, 영원한 것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손해를 볼 것이고,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그러한 일들이 될 것이고, 항상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갈등 속에서 우리들은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이사의 것이냐, 하나님의 것이냐, 이 문제를 놓고도 여전히 갈등하는 바리새인들처럼 그리스도인들도 갈등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결론적으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면, 주인이 누구냐를 여러분들이 먼저 묵상하면 좋을 듯합니다. 우리의 주인이 누구냐?
그러니까 저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내가 주인이야” 이렇게 외치고 있었던 그 철부지들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이러한 주관들이 뚜렷한 일관성을 가지고 있게 된다라면,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쉽게 여러분들이 판단하리라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의 것은 영원한 것으로서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고, 이 세상이 없어질 것보다도 더 소중하고 더 귀중한 그런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시고, 우리가 이 회색지대, 이 중간지대에서 정말 어떻게 선택할 것이냐.
우리가 세상의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우물을 팔 것이냐, 아니면 여전히 세상을 따라갈 것이냐를 여러분들이 묵상하시고, 한 주 동안 나는 정말 하나님 나라의 그 가치에 대해서 그 소중함을 알고 있는가? 나는 그 가치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가?
여러분들이 묵상하는 한 주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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