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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19:16~30 부자 청년의 근심과 제자들의 질문


시애틀의 날씨는 변화무쌍합니다.

네. 비가 왔다가도 날씨가 맑고, 맑다가도 비 오고, 여러분들이 시애틀에서 오랫동안 사신 분들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그다지 날씨에 대한 영향은 받지 않으리라고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게 그런 겁니다. 날씨처럼 하나님은 항상 계시고 함께하심에도 불구하고, 어떨 때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신다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는 니고데모라는 유대인의 고위 관리, 종교 지도자가 밤중에 예수님 앞에 나와서 거듭남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거듭남이 무엇입니까?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합니까?

라는 그런 엉뚱한 질문을 예수님께 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부자 청년이 영생에 관한 문제로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과 대화하는 그러한 장면이 본문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16절을 보시면,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영생을 어떻게 해야 얻습니까?

영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물었다는 것이죠.

가장 사람이 살면서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이 부분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요한복음을 제외한 마태, 마가, 누가복음 모든 공관복음에 이 말씀이 등장을 합니다.

그만큼 이 말씀이 중요하고 소중한 말씀이다라는 것. 그리고 제자들, 성경을 기록한 모든 사람들에게 굉장히 충격적인, 인상적인 그런 장면이었다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 사람의 신분을 가만히 이렇게 들여다보면, 연세가 드신 노인분이 아니고 청년이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연세가 많이 든 분이 아니라 청년이었다.

청년이면서도 이 사람에게는 많은 재물이 있었다.

얼마나 참 부러운 그러한 모습입니까? 그런데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도 마찬가지로 이 청년이 부자였다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누가복음에는 이 청년이 관원이었다라는 그 말을 합니다.

누가복음 18장 18절을 보시면,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 영생을 얻으리이까?”

여기서 관리, 관원이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유대교 회당의 지도자나 아니면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이지 않았나 이렇게 추측을 합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다라는 얘기는 오늘 식으로 얘기를 하면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자, 보세요. 나이도 젊습니다.

돈도 많아요.

그리고 또 신분적으로 국회의원입니다.

뭐 하나 내세울 것이 빠질 것이 없는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들, 아니면 세상의 모든 부러움들, 이런 것들을 이 청년은 다 가지고 있었다라는 것을 보게 되죠.

젊다라는 것은 굉장히 건강하다라는 그런 얘기 아닙니까? 거기다가 재물도 있어요. 또 권력도 있습니다.

명예도 있는 겁니다.

젊다라는 것은, 건강하다는 것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라는 이러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거기다가 이 사람은 종교 지도자요. 이 당시에는 종교와 정치가 하나로 묶어져 있는 시대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아주 촉망받고 유능한, 사회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청년이었다.

야,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청년이 도대체 무엇으로 이렇게 이런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을까?

우리들이 한번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런데 돈이 많고 젊은이면 어떤 결함, 예를 들면 도덕적인 어떤 결함 같은 것이 있을 법한데 도덕적인 약점도 없습니다.

요즘 뭐 미국의 엡스타인 파일 해 가지고, 세상에 모든 지저분한 것들이 낱낱이 폭로되는 그러한 기간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청년은 부족함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서 도덕적인 약점도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서 질문을 하면서 계명을 지키라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을 때, 이 젊은이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또 다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계명을 잘 지키는 유복한 가정에서, 부모님들의 종교 교육, 엄격한 교육 아래에서 자랐던 이런 모습을 우리들이 또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청년에게는 하나 더 부러운 것이 있습니다. 부러운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그런 믿음도 있었다는 겁니다.

한번 볼까요?

마가복음 10장 17절을 보시면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 “예수께서 길에 나아가실새, 이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오신다라는 그러한 소식에 이 청년이 달려가서 꿇어 앉아서 그를 맞이합니다.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여기 겸손함도 있어요.

여러분들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젊습니다.

또 재물도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열정도 있어요.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나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 이런 것들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합니다. 겸손함도 있어요.

우리 이런 청년이 저희 집에 사위가 돼야 되는데. 지금 에스더는 뭘 하고 헤매고 다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남자, 이런 신분의 사람 한번 하면 탁 잡아와야 되는데.

여기서 선한 신앙의 겸손함 같은 것도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가리켜서 선한 선생님이라는 이 표현을 써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행하심이나, 또 예수님의 말씀이나, 예수님의 기적이나 이런 모든 것들을 보면, “야, 이분은 정말 낮은 자를 위해서 왔고, 약한 자를 위해서 왔고, 그분은 자기의 시간, 자기의 삶을 돌보지 않고 어렵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그러한 분이구나. 참 존경스러운 분이구나”라는 이 생각에서 선한 선생님이라는 이런 표현을 씁니다. 우리가 성경을 계속적으로 보아왔던 것처럼, 이 당시에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만날 때 그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올무에 엮을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잡을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비방할까, 이런 것들만 연구한 그러한 사람들인데, 반해서 이 젊은 청년은 예수님께 나와서 존경합니다.

무릎을 꿇고 그의 겸손함을 이렇게 보여 주는 그런 모습을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제 예수님과 이 청년이 대화를 하는데, 청년이 예수님께 질문하는 것은 “무엇을 해야 됩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라는 이러한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지키라.

계명을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이 젊은이가 “계명을 다 지켰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것을 다 지켰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내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그 이후에 와서 나를 쫓아라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계명을 지켰다라고 생각하는 이 청년에게 예수님은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나를 쫓는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계명을 지키는 것과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것, 이게 이제 같은 맥락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라고 얘기를 한다면,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줄 수 없는 거죠.

계명을 지켰다라고 생각을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팔아서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그러한 상황이라는 겁니다. 이게 두 개가 따로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같은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다 지키라라고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젊은이는 계명을 다 지켰다라고 예수님께 당당하게 이야기해요.

그런데 이 말씀 앞에 어떤 말씀이 하나가 첨가가 되냐면, “선한 선생님이여”라는 이 말씀을 첨가합니다.

이 청년이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하신 이는 오직 하나님 외에는 없다”라는 이 말씀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청년이 나왔죠. “영생을 어떻게 해야 얻습니까?”

계명을 지키라라고 이야기하죠.

“내가 어렸을 때부터 다 지켰습니다.”

얘기를 하니까 예수님은 너 있는 것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나를 쫓아라라고 이야기했을 때, 이 젊은이가 예수님 앞에 나와서 “선한 선생님이여”라는 이 표현을 썼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이 청년과의 대화 가운데 우리가 하나 꼭 기억해야 될 것은 무엇이냐면, 왜 예수님께서는 이 젊은이를 향해서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라는 이 표현을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 청년에게 향한 그러한 답변은 무엇이냐면, 선한 것은 사람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선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나온다.

그래서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한 것은 하나님께로만 나오는 것인데, 우리가 아무리 세상에서 재물을 쌓고, 명예를 쌓고, 건강을 쌓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함을 받는 그 모든 것들을 다 쌓는다 할지라도, 그 선함이 나의 노력에 의한, 나의 열심에 의한 결과냐? 아니면 그 선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결과냐?” 이것을 지금 묻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한 일은 오직 하나님이신데,” 다시 말씀드리면 네가 지금 쌓아 왔던 이 모든 것들, 재물, 건강, 젊음, 부와 명예,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냐라고 이렇게 되묻는 장면이다라고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자 청년이 지금 하고 있는 말은 뭐냐면, 내가 어떤 일을 해야 되느냐라고 묻는 거죠.

“내가 어떤 일을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라고 이렇게 묻죠.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무엇이냐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됩니까라는 질문을 먼저 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의 삶이 너의 열심과 너의 노력으로 주어진 것이라면,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는가라는 이 질문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영생을 얻는 겁니까? 이 질문을 예수님께서 하라라고 오히려 이 젊은이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그렇죠?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 됩니까? 열심히 전도해야 됩니까? 열심히 봉사해야 됩니까? 열심히 기도해야 됩니까? 성경을 읽어야 됩니까?

무엇을 해야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얻습니까? 라고 우리가 주님께 이렇게 기도를 할 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그것보다 먼저 너의 신분, 다시 말씀드리면 네가 하나님의 백성이냐, 하나님의 자녀 됨이냐,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냐, 이것을 먼저 생각해라라고 우리들에게 묻는 것과 똑같다라는 그 얘기죠.

그래서 계명을 지켰다라고 이야기하는 이 청년에게 하시는 그러한 말씀은, 그 계명을 지킴이 너의 열심을 나타내기 위함이냐, 아니면 너의 종교적인 어떤 것을 쌓아 올리기 위함이냐? 예수님이 이렇게 지금 묻고 있는 거죠.

결국 선한 것은, 선한 일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쌓아 온 이 모든 것들, 재물들, 그것을 다 팔고 하나님을 쫓으라라고 이제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재산을 다 팔아라라고 이야기하는 그 말씀은 뭐냐면, 너는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고 이야기하나, 내가 볼 때는 계명을 다 지킨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너에게 있는 것들 다 팔아서 나눠 주고 나를 쫓아라라는 말에 네가 반응을 안 하는 것 보니까 그렇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청년은 자신의 어떤 수고나 자신의 노력, 이런 것들로 쌓아 올린 그런 상아탑인 겁니다. 자신의 어떤 명예, 자신의 어떤 부인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가 없는 겁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라고 표현을 하는 거죠.

만약에 예수님이 계명을 지켜라라고 이야기할 때, 그 계명을 지킨다라는 것은 어떤 규칙을 지킨다라는 그 차원을 뛰어넘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경에서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하라, 또 이런 것들을 하지 마라, 이런 계명들이 쭉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은 하나님께 속한 어떤 백성으로서의 규칙을 지켜라라는 그 상황을 뛰어넘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계명을 지키라라는 그 의미는 어떤 의미가 있냐면, 요한복음 15장에 포도나무의 비유가 굉장히 적절한 비유인데, 내 안에 붙어 있느냐라는 겁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붙어 있느냐,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냐, 이것을 먼저 깨닫는 겁니다. 그때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는 것이죠.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붙어 있지 않고 계명을 지켜 나갈 수가 없다는 겁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께 연결이 되었느냐라는 것을 먼저 우리들에게 이야기하는 거죠.

그래서 앞에 나오는 13절부터 15절에 있는 어린아이의 비유가 여기서 등장을 하는 겁니다.

어린아이의 비유를 오늘은 읽지를 않았는데, 어느 것 하나 성경에는 빼놓을 것이 없는 겁니다. 성경에는 다, 저번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13절부터 15절에 나오는 이 어린아이의 비유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고서 넘어가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서 어린아이의 비유가 그 앞에 지금 나와 있는 겁니다.

우리가 저번에 소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죠.

어린아이의 믿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죠. 이 어린아이가 등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냐면, 어린아이는 부모로부터 공급되어지는 것을, 아니면 부모 외에 다른 어른들로부터 공급되어지는 것을 받아먹고 사는 사람. 이 사람을 어린아이, 소자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지금 이 부자 청년과의 대화 속에서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라는 것은, 부모로부터,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으로부터 네가 받아먹고서 이게 이루어진 일이냐, 이것을 묻는 겁니다.

이 소자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죠.

그래서 여기에 등장하는 소자라는 그러한 개념은 물론 어른들로부터, 아니면 부모로부터 공급받는 위치, 보호받는 위치에서의 소자가 이렇게 나오지만, 여기 19장에 등장하는, 13절부터 15절에 등장하는 소자의 이 개념은 무엇이냐면, 어떠한 하나님의 규칙, 또 하나님께서 세우신, 어른들이 세운 어떤 규칙들 있지 않습니까?

어른들이 이런 규칙들을 세워 나가는 거죠.

어린아이는 그 규칙 속에서 따라 나아가는 것이고, 이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이 규칙 가운데, 이 질서 가운데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어린아이가 마치 어른들이 세운 규칙 속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그래서 여기에서 이제 소자의 개념이 등장을 하게 되는데, 결국 예수님께서 청년에게 하고자 하는 말씀은 선함은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어른들이 세운 규칙 속에서 어린아이가 자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세우신 규칙 속에서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이다라는 이 설명을 지금 부자 청년과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어떤 규칙을 지킨다라는 이런 이야기들은 율법을 지킨다라는 이 차원을 조금 뛰어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우리가 때로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라는 선도 넘지 못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상식 밖에 있는 사람들 많이 보지 않습니까?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러분들이, “아, 권사님이시죠? 아, 장로님이시죠? 아, 교회 다니세요” 이런 말을 듣는 것과, 상식을 뛰어넘지 못할 때 “저 사람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을 주는 그런 분위기인 거죠.

상식선을 뛰어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겁니다.

한번 보세요. 상식 위에 뭐가 있습니까? 도덕이 있고 윤리가 있지 않습니까?

이 기본적으로 우리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때, “쟤는 뭐 기본 이하, 인간 이하야”라는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상식선도 뛰어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 위에 뭐가 있냐면 도덕과 윤리가 이렇게 놓여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도덕과 윤리 위에 무엇이 있냐면 종교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상식도 뛰어넘어야 되고, 도덕과 윤리도 뛰어넘어야 되는 하나님의 그런 자녀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에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이런 소극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극히 기본적인 겁니다.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야 될 사회 속에서 상식적으로 지켜야 할 그런 선인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얘기를 하냐면,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런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너를 비방하고 너를 미워하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라. 이런 우리의 수준, 우리의 위치를 이렇게 높여 놓은 겁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 가지 안에 붙어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만들어 놓으신 어떤 바운더리라고 얘기를 할까요? 쉽게 이야기를 하면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어떠한 룰 속에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세우시고, 우리들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을 못하면서 사는 그런 사람들이 가장 많다는 겁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공급받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쫓아 우리들이 행하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거룩함이 우리들에게 나타나고,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그러한 마음도 갖게 되고, 악한 것들을 보면 멀리할 수 있는 이런 마음을 갖게 되고, 이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세워 주신 어떤 규칙 속에서 살아갈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런데 계명을 지킨다라는 이 의미가 뭐냐면, 이 안에서, 바운더리 안에서 나타나는 일들을 규칙적으로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 이것을 우리들이 계명을 지킨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마음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 청년에게 지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계명을 지킬 길을 요구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이 테두리 안에서의 네가 삶을 살고 있느냐?

이것을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청년이 아무리 재물이 많았다 할지라도, 명예가 있다 할지라도, 겸손함이 있고 도덕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 바운더리 안에서 이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그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계명을 지켜라라는 것은, 어른들이 세우는 그런 규칙 속에 어린아이가, 소자가 그 규칙을 따르면서 살듯이,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어떤 규칙 속에서 성도들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우리의 삶 속에서 행하는 것, 이것을 가리켜서 계명을 지킨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라고 얘기를 했다는 것은, 이 규칙 속에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세워 놓으신, 만들어 놓으신 이 틀 속에서 살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것이죠.

이해가 좀 되시죠?

뭐 이해가 안 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니까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결국은 계명이라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지 않습니까? 이 계명이라는 것은 우리를 속박시키기 위해서, 그 안에 얽어매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주신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계명을 주신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냐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처럼 우리를 구원하셨을 때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우리들에게 부여시킨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그 거룩함이 우리들에게도 있는 겁니다.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그 선함이 우리들에게도 있는 겁니다.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그 도덕적인, 윤리적인 풍성함이 우리들에게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계명을 지킬 것을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뭐냐면, 우리가 이것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함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풍성함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도덕적인 그 풍성함이 우리들에게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전에는 시장 한편에서 그냥 잡상인들이 파는 자판 위에 놓여 있는 물건이었다면, 우리를 구원하사 하나님께서 최고로 비싼 백화점의 명품관 안에, 명품 전시장 안에 우리를 가둬 놓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냐면, 명품관 속에 들어 있는 명품과 같은 그런 존재가 된다는 겁니다.

이게 계명을 주신 목적입니다.

아멘.

여러분들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사람들과 다투고, 사람들을, 원수들을 못 견디어 하고, 질투하고, 막 세상적인 말이 나오고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어떻습니까?

조금 가치가 없는 인생과 같다라고 이렇게 생각되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혹시 그런 분들 그냥 회개하라고 이렇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어디를 가더라도, “교회를 다니시는 분이죠. 권사님이시죠. 당신을 보니까 참 교회 다니는 분 같아서 묻습니다.” 이런 말을 우리들이 듣는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그러니까 우리의 수준이 고급화되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뭐 계명을 지켜서 지옥을 가느냐, 천국을 가느냐 이런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계명을 주셨다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 계명이 지금 어디에서부터 나오냐면, 하나님의 성소에서부터,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을 우리들이 받는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청년은 지금 그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청년의 실패 원인이,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냐면, 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고 우리 믿는 사람들, 신앙인들조차도 부러워할 그러한 것을 가졌지만, 이 청년이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은 자신의 의지나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선함을 나타내는 그런 행위로 쌓아 올린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21절 말씀을 여러분들이 보시면, 21절에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자, 이 청년이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재물들, 이 모든 것들은 청년의 어떤 자신됨의 근거라고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겠죠.

그러니까 부자 청년이다라고 얘기를 하면, 우리들이 보통 성경을 읽을 때 “아, 모든 것들을 갖춘 완벽한 사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신의 됨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를 쫓아라라고 얘기를 하는 것, 다시 말씀드리면 너의 가지고 있는 것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나를 쫓아라라는 얘기는, 네가 쌓아 올린 지금까지 모든 것들을 다 버려라.

그리고 나서 나를 쫓아라.

예수를 채워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채워라라는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젊은이는 어땠죠?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것이 너무나도 아까운 겁니다. 이거 버리기가.

때때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시는 그런 분들도 이런 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성도라고 불림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으로 채우지 않으려는 아주 용기가 있는, 용감한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시 말씀드릴게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다. 또 그렇게 불림을 받기를 좋아하고, 나는 교회 다닌다라는 것을 자랑하고, 우리의 직분들을 자랑하고, 우리의 신앙을 자랑하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채우려고 하지 않는 그런 삶을, 그런 신앙생활을 우리들이 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죠.

하나님으로 채워라라는 겁니다.

너희들이 다 세상에 있는 것들 다 버리고 나를 쫓지 않았느냐?

좁은 문으로 들어왔고, 좁은 길로 지금 걸어가고 있지 않느냐? 그렇다면 이제 하늘에 있는 것들로, 신령한 것들로 채우기를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데, 이 좁은 문을 통과하고 좁은 길을 걸어가면서도 세상에 있는 것들로 채우려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뭐 이 정도면 됐지. 뭐 이만하면 됐지.

내가 지금까지 교회에서 이 정도 봉사했는데 이 정도면 됐지. 내가 교회에 이렇게 헌금을 했는데 이 정도면 됐지. 내가 이렇게 교회 안에서 기도 많이 하는데 이 정도면 됐지 하고서 살아가는 그러한 신앙인들이 결국은 굉장히 많이 있다는 것이죠.

천국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가지고서는 하늘나라로 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지금 잘못된 점은 뭐냐면, 세상에 쌓아 놓은 이것을 가지고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겠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주인이신 거죠. 세상이 주인이 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 것을 가지고서 하나님 나라로 가려고 하니까 예수님의 답변은 당연히, “너 그거 버려야 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주고 나를 따라와라. 그래야 네가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 세상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 것으로 채워야만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답변을 지금 이 부자 청년에게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부자 청년이 생각하고 있는 이 부자의 어떤 개념이 가진 자에 대한 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이것을 지금 부자라는 개념으로 여기에 등장시키고 있는 거죠.

재물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나의 기도가 쌓이고, 나의 어떤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이런 것으로 하나님께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금 주님이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그게 부자의 개념으로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네 가지고 있는 재물 다 팔고 나를 쫓아라라고 얘기를 하는 것은, 네가 지금까지 쌓은 세상적인 것들 다 버리고, 그리고 나서 나를 쫓아라라고 이야기하시는 거죠.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야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22절에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 “그 청년이 재물이 많음으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재물이 많으므로, 세상에서 쌓은 것들이 너무 많으므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명예도 쌓았죠.

부도 쌓았죠. 도덕적인 것도 쌓았죠.

겸손함도 쌓았죠. 너무 많지 않습니까? 우리가 부러운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것들이 너무 많으므로, 이것들 버리기가 너무나도 아까운 겁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이거를 쌓은 건데?”

젊은 시절에 얼마나 노력을 했으면 이렇게 쌓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청년이 “어려서부터 내가 이것을 지켰나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을 보면 아주 오랜 시간을 이런 것들을 쌓아 올린 것 같습니다.

그랬을 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그거 다 필요 없다. 천국에서는 그거 다 필요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으로 채운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거죠.

용감한 우리의 사도 되시는 베드로 사도께서 그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 그렇게 했는데 무엇을 얻습니까?”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주님, 우리는 세상 것들 다 버리고 쫓았습니다. 배도 버렸고, 아비도 버렸고, 다 버렸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그러면 얻습니까?”라고 주님께 이야기하죠.

역시 베드로 사도다운 그런 질문인데, 거기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어떻게 나오냐면, 너희가 영원한 것으로 보상받으리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영원한 것으로.

영생으로 보상받으리라.

여러분들 아브라함이 아비 집을 떠나고 친척 집을 떠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지금까지 아브라함을 보호하고 있던 그 바운더리로부터 아브라함이 떠난 겁니다. 떠났는데 이제 누가 아브라함을 지키느냐?

하나님께서 지킨다는 겁니다.

세상에서 떠난 아브라함을 그냥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이라는 이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와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우리가 주를 쫓았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주어집니까? 당연하고 지극한 그런 질문인 거죠.

그랬을 때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보상이 너희들에게 있겠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영생을 너희들이 소유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그러니까 뭐든지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다 영혼과 연결되는 것이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시간, 또 우리의 젊음, 또 우리의 물질, 우리 많은 것들을 예수를 위해서 우리들이 헌신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그 시간도 마찬가지고, 예수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들이 참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우리들에게 영생으로 보상하겠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자꾸만 “주님, 내가 이렇게 했으면 세상적인 보상 좀 주십시오”라고 얘기하지만, 주님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영생으로, 더 많은 것으로, 더 풍성한 것으로, 영원한 것으로 우리들에게 채워 주겠다라고 이야기하고 계시는 겁니다.

결론을 내리면, 한 사람은 재물을 좇아갔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질문 앞에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좇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부요함이라는 그 얘기는 우리가 붙드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인 것이죠.

우리가 이것을 붙드느냐, 아니면 영생인 그리스도 예수를 붙드느냐, 이 근본적인 질문이 이 안에 담겨져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중심은 하나님께로부터 있습니다라는 이 표현이,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습니다라는 그 의미인 것이죠.

우리의 마음은 세상 것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채워져 있습니다라는 그 고백이겠죠.

우리가 신뢰할 것, 우리가 사모할 것, 그런 것들은 세상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모하고 우리가 신뢰하고 우리가 바라는 이런 것들은 다 영적인 것이고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들입니다.

이런 고백이 이 제자들에게 지금 남아 있겠죠.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의 세계관이 바뀝니다. 아 그들이 지금까지 생각하던 것들이 바뀌는 거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렇게 해야만이 세상에 보상을 받는 줄로 제자들은 알았지만 아 그것이 아니구나. 이거는 영점인 그 나라에 상속을 받는구나.이 이 세계관이 제자들은 바뀌었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그 신앙의 깊음 어 깊어진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국은 우리에 있는 것들을내어 버리는 것들이고 하나님을 더욱더 붙잡는 것이 신앙의 깊음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어 공급처 영적인 공급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만 채워야 하나님의 것으로만 채워야 아 우리가 아 하나님으로부터 더욱더 성숙된 신앙인으로 아 그리고 또 우리의 손에 놓을 것들은 다 놓고 하나님 것은만 붙잡는 그런 믿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을 가지고 한 주 동안 여러분들이 살아가시고 살아계신 주님을 삶 속에서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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