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6:21~28 베드로의 열심과 하나님의 일
- seattleomc
- Jan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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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분들 가서 한 번 인사하시죠.“한 해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애쓰셨습니다.”
한 해 동안 수고하셨습니다.여러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2025년, 우리가 이제 마지막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항상 송구영신 예배를 밤 10시쯤에 모여 예배드리고,자정이 되면 하나님께 첫 시간을 드린다는 마음으로다시 예배를 드려 왔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8시부터 모여찬양과 기도로 시작하고,여러분들의 한 해 동안 있었던 일들을 감사로 돌아보며,또 여러분이 가까이했던 성경 말씀,특별히 좋아했던 성경 구절을 읽고왜 그 말씀이 좋았는지를 함께 나누는그런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아마 10시 안에는 끝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 나라는전 세계적으로 거의 한국밖에 없죠.인종 가운데서도 한국 사람들만 드린다고 해도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미국 땅에 와서 살고 있지만,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또 한국 사람인 덕분에우리가 송구영신 예배를 드립니다.
참 마음이 좋습니다.무엇이든 처음 것을 소중히 여기고,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마음은너무나도 좋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 살아가면 참 좋은데,그 마음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 문제죠.연약한 우리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오늘은 베드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베드로나, 저나, 여러분이나다 똑같은 사람들 아닐까요?
늘 실수하고, 넘어지고,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살아가는 존재,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덮이지 않으면살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으로당신이 고난을 당하시고,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예고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말씀 이전에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베드로가 이렇게 고백하지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 이후에 비로소 주님께서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처럼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본격적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때로부터”라고 시작하는데,이 ‘이때’라는 말은베드로의 고백 이후부터라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많은 고난을 받고죽임을 당하고제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비로소 제자들에게 나타내시니라.”
지금까지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셨고,병든 자들을 치료하셨고,소망 없는 자들에게 소망을 주셨고,죄인과 세리들의 친구가 되어그들을 가까이하셨습니다.
반면에 정치 권력자들,종교 지도자들과는 거리를 두시고,그들의 잘못을 낱낱이 드러내어책망하셨습니다.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셨고,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워 주셨고,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하시며천국의 말씀으로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최종 목적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본질,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많은 고난을 받고,죽임을 당하고,제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이것이 예수님께서이 땅에 오신 본질이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죽으시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무지,사람들의 잘못이예수님을 죽게 만든 것이 아니라,예수님께서스스로 죽으러 오셨다는 사실을이 장면에서 분명히 밝히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고백 이후,베드로의 신앙 고백 이후에예수님은 더 이상 많은 무리들과만 다니시지 않고,소수의 제자들과 함께하시며천국의 말씀을더 깊이, 더 분명하게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입장에서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을 생각해 본다면,얼마나 기가 막히고 어리둥절했겠습니까?
왜냐하면 제자들은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가족도 버리고,생업도 버리고,친구도 버리고,이웃도 버리고,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역의 마지막으로 가면 갈수록제자들 안에는 분명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제자들이 생각하던 메시아상,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떠올리며“이제 우리에게 상급이 있겠구나.이제 우리에게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할놀라운 권세가 주어지겠구나.”이런 기대감이제자들 마음속에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내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고난을 받고,죽임을 당하고,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제자들 입장에서는이 말씀이 너무나 당황스럽고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을 대표해서베드로가 나섭니다.22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주여, 그리 마옵소서.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 것은“주님께서 그렇게 당하시도록내가 가만히 두지 않겠습니다”라는각오가 담긴 말이었을 것입니다.
또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누구보다도 베드로에게 앞섰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결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제가 목숨을 다해서라도주님을 보호하겠습니다.”그런 의미가 담긴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고백 속에서베드로는 주님의 말씀,하나님의 뜻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주님이 오신 목적을베드로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16절에서는“주는 그리스도시요,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놀라운 신앙 고백을 했고,그 고백으로 주님의 칭찬과 극찬을 받았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자신이 오신 목적을 밝히시자,이번에는 베드로가 나서서주님의 일을 가로막는 상황이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이 베드로의 말에 대해매우 강하게 꾸짖으십니다.“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이 정도로 강하게 책망하시는 장면을오늘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이 본문을 생각해 보면,오늘날 우리의 모습도베드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깨닫게 됩니다.
어떤 때는베드로의 16절 고백처럼아름다운 신앙 고백을 하다가도,어떤 때는오늘 22절에 나오는 것 같은고백을 하는 우리의 모습을우리는 얼마나 자주 경험합니까?
은혜를 받으러 교회에 왔다가오히려 상처를 입고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왜 이럴 때는16절의 고백이 나오다가,또 어떤 때는22절과 같은 고백이 나올까요?
우리는 다 알 수는 없지만,오늘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우리의 신앙을다시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도 역시“주는 그리스도시요,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고백하면서도,
동시에“주님,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면 안 됩니다.일어나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베드로와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우리 모두가 베드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얼마든지 실수하고,넘어지고,연약한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22절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면“항변하였다”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이 말은 ‘꾸짖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붙들고마치 부모가 자녀를 꾸짖듯이주님의 말씀을 강하게 막아서는 장면입니다.
또 “그리 마옵소서”라는 표현은아주 간절한 요청입니다.꾸짖기도 하고,간절히 부탁도 하면서주님의 마음을 돌리려는 모습이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는 말은아주 강한 의지와 확신을 담은 표현입니다.
그런 베드로에게예수님께서는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이런 일들은그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교회 안에서도얼마든지 이런 일들이 반복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뒤로 미루어 두고,사람의 일,내 생각과 내 판단을앞세우는 경우가얼마나 많습니까?
처음에는 기도로 시작했고,하나님의 일로 출발했는데,과정 속에서는하나님의 일은 잊어버리고내 일이 앞서는 경우가개인의 신앙 속에서도,교회의 사역 속에서도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왜 사탄은 베드로에게하나님의 일이 아니라사람의 생각을 불어넣었을까요?
물론 베드로 사도에게신앙의 미성숙한 부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이런 일들은베드로 사도에게만 나타나는 일이 아니라,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는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께서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부르신 것은베드로 자체가 사탄이라는 말이 아니라,그의 행위와 생각을 향해사탄적이라고 질책하신 장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사람의 뜻을 우선하게 될 때사탄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그 결과 나타나는 행동이 무엇입니까?언제나 예수님보다 앞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뒤에 두고,우리가 앞서서 판단하고,우리가 앞서서 결정하고,우리가 앞서서 행동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하나님의 일은 뒤로 미루어 두고사람의 일을 한다”라고 표현합니다.
성경을 보면이런 교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책망받는 교회들 역시하나님의 일은 뒷전으로 두고사람의 생각을 앞세운 교회들이었습니다.
사탄이 베드로의 마음속에 불어넣은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예수님보다 앞서려는 마음,예수님을 뒤에 세우고자기가 앞에 서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똑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봉사하는 일,교회 사역,헌신하는 일,심지어 전도하는 일까지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뒤에 계시는데,우리가 앞서서내 생각대로, 내 판단대로일을 밀어붙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럴 때 얼마나[웃음]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됩니까?
질서가 무너지고,방향이 흐려지고,의미가 사라지는 일들을우리는 교회 안에서도얼마든지 보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하나님의 일이 뒷전이 되고사람의 생각이 우선이 되면,사람들은 만족할 수 있습니다.사람들은 즐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일은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다”라고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도 있고,비교적 최근에 시작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어느 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를우리는 얼마나 많이 봅니까?
저 같은 경우는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분들을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평생 교회에서 직분자로 살았고,장로로 섬겼던 분이마지막 순간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고 답답합니까?
오늘 하루 예수님을 믿었더라도“내가 죽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간다”라는담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평생 예수님을 믿었음에도죽음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들이얼마나 많습니까?
또 어떤 분들은평생 신앙생활을 해 왔는데도힘들고 어려운 문제 하나 앞에서주저앉아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우리를 다시 회복시키시고,은혜의 자리로 다시 붙드시고,다시 인도해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오랜 시간 동안기도하고,찬양하고,말씀을 들으며 싸워 왔던 그 신앙이어려운 문제 하나 앞에서한순간에 무너져 버린다면,
그때 우리는“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다”라고 하신예수님의 말씀을우리 자신에게서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이 예수님께 이렇게 유혹합니다.왜 그렇게 고통스럽게 십자가를 져야 하느냐?돌로 떡을 만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얼마든지 인정받을 수 있지 않느냐?왜 그렇게 복잡하고 구차한 길을 가려 하느냐?
네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천사들이 가만히 두겠느냐?발에 상처 하나 나지 않게너를 보호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사탄이 이렇게 말합니다.“내게 절하라. 그러면 모든 것을 다 주겠다.”
이 사탄의 속삭임은언제든지 예수님 곁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까지도사탄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와라.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내려와라.그러면 너도 구원하고많은 사람도 믿게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사탄은 언제나그럴듯한 말로,이해되는 말로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사실 저뿐만 아니라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습니까?작은 일 하나에도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경험이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사탄이 우리를 무너뜨리는 방법 중 하나는바로 이것입니다.하나님의 일을 뒤로 미루고사람의 일을 앞세우게 만드는 것.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하나님의 일이 뒷전이 되고사람이 우선이 되면모든 중심은 사람 중심으로 바뀝니다.
사람은 만족할 수 있습니다.사람은 즐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않는 일들이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물론 자녀 교육을 위해큰 교회를 찾는 부모의 마음,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말씀으로 삶이 변화되지 않고,주님이 가신 길을 따르지 않고,분위기만 따라간다면그것은 베드로를 유혹했던사탄의 유혹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23절 말씀을조금 더 쉽게 풀어 말하면이런 의미입니다.
“베드로야,너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랐지만정작 나를 이해하지는 못했구나.”
베드로뿐만 아니라제자들 모두는예수님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이 압박과 어려움 속에서우리를 해방시켜 줄 메시아.
그러나 예수님은지금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나는 십자가에 죽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24절 말씀이 이어집니다.이 말씀은23절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못 이해했던 예수님,오해했던 메시아관을 바로잡고,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어떤 길인지분명히 설명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자기를 부인하고자기 십자가를 지고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길,제자의 길,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성도의 길은자기를 부인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쉽게 넘어지는 이유도여기에 있습니다.자기를 부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부인이란자기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자기 부인이란하나님의 일을 앞세우고하나님의 뜻을 우선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이란모든 것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을 때사용된 단어도“단절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완전히 끊어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 자신을 부인하라.”모든 것과 단절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서는이 자기 부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썩어져 가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새 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은구습을 따르는 사람,세상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새 사람은의와 진리와 거룩함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옛사람과의 단절,새 사람과의 결합.이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창세기 12장의 아브라함을 보십시오.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버리고하나님을 따랐습니다.
이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 부인이 없이는하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자기 부인이 없이는새 생명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리라.”
이 약속은자기를 부인하고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동일하게 주어지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주님은한 가지를 더 말씀하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나를 따르라.”
여러분, 이 부분은오해가 생기기 쉬운 대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자기에게 주어진 어려움이나 고통을 두고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내 십자가지요.”
어떤 분은“남편이 내 십자가입니다.”라고 말하고,
어떤 분은“아내가 내 십자가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분은자녀를 가리켜“이 아이가 내 십자가입니다.평생 짊어지고 가야지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십자가라면얼마든지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주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는그런 의미의 십자가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순종입니다.십자가는 희생입니다.십자가는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자기를 희생하지 않고,자기 자신을 순종시키지 않으면서주님을 따른다고 말하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왜 주님께서 우리에게자기를 부인하고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명령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힘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세상은 우리를 끝까지 위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친척과 본토와 아비 집을 떠났던 이유도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것입니다.
“지금까지 너를 지켜 주었다고 생각했던 그곳을 떠나라.이제는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어너보다 앞서 가고,너를 지키고,너를 보호하겠다.”
자기를 부인하고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은이런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누려 왔던 세상의 즐거움,지금까지 내가 추구했던 세상의 영광,지금까지 내가 의지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하나님께서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세상에서는 알 수 없는 것을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자기를 부인하고십자가를 지고주님을 따른다는 의미는 이것입니다.
이제는세상이 나의 즐거움이 아니라,하나님이 나의 즐거움이 되고,
세상이 나의 만족이 아니라,하나님이 나의 만족이 되며,
세상이 나의 목적이 아니라,하나님이 나의 목적이 되는 삶으로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24절에서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아침마다 식사 기도를 하십니까?
아침뿐만 아니라식사할 때마다기도하십니까?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식사 기도는 아주 중요한 신앙 고백입니다.
이 음식이내 힘으로,내 노력으로,내 돈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은혜임을고백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식사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혹시라도식사 기도 없이 식사하는 분이 있다면[웃음]옆에서 살짝 알려 주셔도 됩니다.
자녀들에게도 알려 주십시오.
“이 음식은우리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야.”
이것을 알게 하는 것이바로 신앙 교육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이제 너를 하나님의 복된 자리로 불렀으니,세상이 줄 수 있는 것,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자리에서 떠나영원한 것을 허락하시는 자리로 나오라는 초청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은자기의 십자가를 질 것,자기 자신을 부인할 것을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죠.
결론적으로는,내 주인이 누구냐? 라는 질문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이 우리의 주인이었다면,이제는 나를 부르신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다라는 고백,그것이 바로 자기 부인입니다.그리고 그 고백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눈여겨서 볼 말씀이 있습니다.24절 말씀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인데,이 말씀이 27절과 연결됩니다.
27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그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이 말씀은 24절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다시 말하면,자기를 부인하느냐,십자가를 지느냐,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그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여기서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문제를마지막 심판의 자리까지 끌어올리고 계십니다.
자기를 부인했느냐,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랐느냐.
그래서 이 말씀이 조금은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행함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닙니다.헌금을 얼마나 했느냐,전도를 얼마나 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근본적으로어떻게 알고, 어떻게 믿고, 어떻게 따랐느냐의 문제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이 고백이 있기 때문에자기 부인이 나오고,십자가를 지는 삶이 나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십자가를 진다’**는 말을 들으면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이라고만 생각합니다.그래서 주저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은주님이 함께하시는 길입니다.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그 길은고통의 길이기 이전에복된 길이고,영광스러운 길이며,영생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억지로 희생만 시키기 위해 부르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왕자로, 공주로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의 신분은 왕자요, 공주입니다.자기 부인과 십자가는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자리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통해하나님을 보게 되는 자리입니다.
사람들이“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살 수 있을까?”가 아니라“저 사람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자기 부인이 필요하고,십자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2026년,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여러분이 가는 모든 길에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서 있는 그 자리에하나님이 함께 계시는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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