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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13:51~58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바람이 굉장히 강하게 불더니 잠깐 그친 것 같습니다.9월이 되니까 이제 가을 냄새가 물씬 나지요.여러분들 건강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LA 쪽 같은 데서는 코로나가 다시 크게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2년 동안 우리가 잘 살아남았는데,방심하다가 또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길 바랍니다.아무리 약해졌다 해도,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제 말씀을 봅시다.마태복음 13장 51절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예수님께서는 일곱 가지 비유를 연달아 말씀하셨습니다.그리고 그 모든 비유를 마친 후에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너희가 이 모든 비유를 다 이해했느냐? 깨달았느냐?”

이 질문은 단순히 이해를 묻는 것이 아니라,‘그렇다면 이제 너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어지는 52절 말씀(우리가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에서“옛것과 새것”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 말씀이 바로 일곱 가지 비유의 결론,즉 요약이자 핵심입니다.모든 비유를 압축해 주는 구절이 바로 이 52절입니다.

여러분, 일곱 가지 비유를 들었는데 어떻습니까?다 깨달으셨습니까?다 이해가 되십니까?

(웃음) 아, 조금 곤란한 질문이죠.그래서 오늘 말씀을 들어가기 전에우리가 일곱 가지 비유를 다시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곱 가지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면오늘 본문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일곱 가지 비유를 이해하면오늘 말씀이 훨씬 더 쉽게 다가올 것입니다.

1️⃣ 첫 번째 비유 —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첫 번째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씨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문제는 밭입니다.

성경은 씨를 “말씀”이라고 표현합니다.하나님의 말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문제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심령의 상태가옥토인지, 돌밭인지, 가시덤불인지, 혹은 길가인지에 따라그 말씀이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혹은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다시 말해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하나님의 말씀에는 문제가 없었지만,그 말씀을 듣는 그들의 마음밭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우리가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마음이 닫혀 있는 사람들을 뜻합니다.그런 사람들에게 이 비유를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우리는 처음부터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우리의 마음은 처음에는 옥토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우리를 깨닫게 하시고,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말하는 핵심입니다.

2️⃣ 두 번째 비유 — 가라지의 비유

두 번째는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씨를 뿌렸는데, 알곡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가라지도 함께 자랍니다.제자들이 놀랐습니다.유대인들도 놀랐습니다.

“어떻게 천국 안에 가라지가 있을 수 있습니까?”“천국은 유대인들만 들어가는 곳 아닙니까?”

이 비유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즉, 판단은 우리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이 사람은 신앙이 깊다, 저 사람은 아니다 —이렇게 판단하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건 너희가 할 일이 아니다.추수 때까지 두라.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는 일은 내가 하겠다.”

그래서 이 비유는 우리에게 이웃을 판단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저 사람은 구원받을 사람이다.”“저 사람은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다.”“저 사람은 믿음이 있다.”“저 사람은 심판받을 사람이다.”

— 이런 판단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최종적인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주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우리는 무엇을 보게 됩니까?

바로 끝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가라지 같았던 우리가 알곡으로 변화되는 그 과정 속에하나님의 참으심, 인내하심, 기다리심이 감추어져 있습니다.이것이 바로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가 전하는 복음입니다.

🌱 세 번째 비유 — 겨자씨의 비유

세 번째 비유는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천국은 화려하게,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겨자씨처럼 아주 작고,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시작되었습니다.그러나 그 끝은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일 만큼 풍성하게 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아무리 작아 보여도,그 믿음 안에 생명이 있다면 반드시 자라난다.

씨앗에 생명이 있으면 자라지 않을 수 없듯이,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습니다.그래서 그 말씀은 반드시 자라나 열매를 맺습니다.

🍞 네 번째 비유 — 누룩의 비유

이제 예수님께서는 누룩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가루 속에 감춰진 누룩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그러나 천국은 이처럼 보이지 않게, 그러나 꾸준히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천국은 증폭되고, 자라며, 번져 갑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겨자씨처럼, 누룩처럼, 작게 시작한 모든 일들 중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때로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합니다.하나님의 자녀로 떳떳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그러나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졌다면,그 결론은 하나님이 이끌어 가십니다.

주님께서는 그 씨앗을 풍성히 자라나게 하셔서결국 열매 맺는 인생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이것이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가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 다섯 번째 비유 — 밭에 감추어진 보화의 비유

다섯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밭에 감추어진 보화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지난주에도 나누었듯이,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은 사람들,곧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 —이들이 바로 밭 속의 보화를 발견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녀들에게는이 세상이 더 이상 우리의 유익이나 즐거움의 근원이 아닙니다.우리는 이제 세상을 넘어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인으로 모십니다.

그런데 이 보화 되신 예수는 처음에는 감추어져 있었습니다.그전에는 그것이 얼마나 귀한지 몰랐습니다.그전에는 그것이 보석인 줄도 몰랐습니다.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니그것이야말로 진짜 보화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수고하고 노력하고 얻은모든 결과물들, 모든 즐거움들을 다 팔아그 밭을 산 것입니다.

밭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그 밭 속에 감추어진 보화 — 곧 그리스도 예수가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의 즐거움, 세상의 지혜, 세상의 자랑,이 모든 것들을 다 팔아 버리고,이제는 보화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그 밭을 산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여러분이 그 밭의 주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비록 땅덩어리가 없다 할지라도,모든 것을 팔아서 밭을 산 사람들입니다.밭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밭에 감추어진 보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산 것이지요.

우리는 세상의 주인입니다.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오히려 주인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것이 바로 밭에 감추어진 보화의 비유의 핵심 내용입니다.

💎 여섯 번째 비유 — 값진 진주를 찾는 장사꾼의 비유

그리고 여섯 번째로,예수님께서는 귀한 진주를 찾아 헤매는 진주 장사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주 그 자체보다,그 귀한 진주를 찾아다니는 진주 장사에게 초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진주 장사는 바로 우리를 찾아 헤매시는 주님을 의미합니다.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그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값진 진주를 사셨습니다.

우리는 그 주님에 의해 발견된 진주들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고,밭 속에 감추어진 그 보석도 함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 일곱 번째 비유 — 그물에 잡힌 물고기의 비유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비유는“모든 그물에 갇혀 있는 물고기와 같다”는 비유입니다.

어부가 앉아서 좋은 고기는 거두고,나쁜 고기는 버린다고 말씀하셨지요.

이 비유는 이렇게 말합니다.

“결국 어떤 물고기든, 어떤 사람이든,모두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운행하심,하나님의 역사 속에 모든 존재가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좋은 것은 내가 거두고, 나쁜 것은 버리리라.”

이 비유 또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심판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일곱 가지 비유를 다 살펴보았습니다.이제 이해가 되시지요?아멘.

이 비유들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우리는 어떤 존재였는가?”“지금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가?”“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

이 모든 것이 이 일곱 가지 비유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자,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3장 52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이 한 구절이 바로 일곱 가지 비유의 결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깨달았다면,이제는 천국의 서기관으로서옛것과 새것을 곳간에서 꺼내는 자가 되어라.”

즉, 하늘의 진리를 맡은 사람으로서 그 말씀을 전하라는 사명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깨뜨리고 싶으셨던 것이 있습니다.그것은 바로 유대주의 사상,곧 “나의 수고와 노력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깨뜨리고 싶으셨습니다.

“나는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니까 천국에 가겠지.”“내 남편이, 내 아내가 믿으니까 나도 구원받겠지.”“나는 율법을 지켰으니까 천국에 들어가겠지.”

— 이런 생각을 완전히 깨뜨리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일곱 가지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그리고 마지막 52절에서 이렇게 요약하십니다.

“천국을 깨달은 자는,성경을 볼 때 항상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예수님은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예수님은 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는가?”

성경은 이 모든 질문의 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은나의 노력과 수고, 신앙의 열심 때문이 아닙니다.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우리는 천국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곱 가지 비유를 통해,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에게 이 비유들을 들려주었는데,이제 너희가 그것을 깨달았다고 하니,앞으로 예수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것이다.”

즉,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성경을 읽는 시각이 달라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한 책이 아닙니다.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나의 구세주가 되셨는가”“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일곱 가지 비유를 통해 우리는복음이 무엇인지,그리고 예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예수가 누구이신지를 깨닫고,그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시각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제 주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꺼내오는 집주인과 같다.”

여기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이라는 표현을 쓰십니다.

✒️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서기관’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십니까?성경을 연구하고, 필사하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누구보다도 성경을 잘 아는 사람, 그것이 바로 서기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서기관들은 바리새인들과 함께주님께 가장 많은 책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왜냐하면 성경을 그렇게 연구하면서도, 그 안에서 예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필사하다가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나오면몸을 씻고, 붓을 새로 갈아 들고,떨리는 손으로 그 이름을 기록했습니다.그만큼 경건하게 성경을 대했지만,정작 그 성경이 가리키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로부터 이렇게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너희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지만,이 성경이 곧 나를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5:39)

그런데 지금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천국의 서기관이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선언입니까?

이제 예수님은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천국의 서기관은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꺼내오는 집주인과 같다.”

즉, 새것만으로도 안 되고, 옛것만으로도 안 된다.두 가지를 조화시켜서 꺼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옛것 — 구약

그렇다면 ‘옛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바로 구약입니다.

구약은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받는다”라는 개념을 담고 있지만,그 모든 말씀의 중심에는 사실 그리스도 예수가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내용이 결국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기생 라합의 집에 약속을 했습니다.

“너희 집 창문에 붉은 줄을 매라.우리가 그것을 보면 그 집은 멸망시키지 않겠다.”

붉은 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합니다.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그 보혈 안에 거하는 자는 멸망을 피합니다.다른 사람들은 다 심판을 받아도,예수 안에 있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이처럼 구약 전체는 그리스도 예수를 예표(豫表)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구약을 읽으면서도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한다면,그것은 큰 문제다.”

구약의 율법, 유대 사상, 전통 —이 모든 것들이 결국 ‘옛것’을 의미합니다.그런데 이 옛것 속에서도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 내야 한다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새것” 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당시에는 아직 신약 성경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때 말씀하신 새것은예수님께서 전하신 새로운 가르침,곧 일곱 가지 비유와 복음의 새 시각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신약 성경을 손에 들고 있는 우리에게는이 새것을 신약 성경으로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구약은 율법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 없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신약, 곧 새것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고,우리의 길을 여시며,감추어졌던 보배를 보게 하셨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아, 예수님이 이래서 필요하셨구나.”“예수님이 이래서 고난을 받으셨구나.”“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셨구나.”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을 빼고 신약만 이야기할 수 없고,신약만 가지고 구약을 버릴 수도 없습니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하나님께서 운행하시는 모든 역사 속에는구약과 신약이 함께 존재합니다.

구약도 중요하고, 신약도 중요합니다.그러나 그 모든 말씀 속에서 우리는보화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꺼내는 집주인” 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이어지는 본문은 마태복음 13장 53절부터 58절까지입니다.예수님께서 고향으로 내려가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출생지는 베들레헴이지만,예수님께서 자라나신 곳은 나사렛입니다.그래서 나사렛을 가리켜 “예수님의 고향”이라고 부릅니다.

55절을 보면 사람들이 놀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그 어머니는 마리아가 아니냐?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니냐?”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의 이런 지혜와 능력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그들은 예수님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같은 동네에서 자랐고, 가족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그 아는 지식 때문에 오히려 예수를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57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배척하니라.”

그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이런 지혜를 가졌는가?”라고 물으면서도,결국 예수를 배척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의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셨습니다.하지만 고향에서만 배척받은 것이 아닙니다.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때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진리를 거스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정작 구원에서 멀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지식은 있었지만,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사렛 사람들의 비극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은 그들대로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예루살렘에서도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 또한 그들 나름대로 예수님을 뒤로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제자들까지도,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다 배반하고, 다 도망쳤습니다.

예수님의 평생 가운데이처럼 배척과 거절의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배척하였더라”라는 그 말은단지 고향 사람들만을 향한 말씀이 아닙니다.모든 유대인들,모든 율법을 가까이하던 사람들이결국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졌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묵상했던 마태복음 12장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시고,앉은 자를 일으키시고,중풍병자를 고치시고,귀신 들린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보고시기와 질투로 인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다시 말하면,“귀신의 왕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내쫓는다”는터무니없는 소문을 퍼뜨린 것입니다.

그 소문을 듣고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나사렛에서부터 예수님을 데리러 오는 장면이바로 12장에 등장하지요.

그리고 오늘 본문, 13장 마지막 부분에서도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배척을 당하셔야 했을까?”“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마저 예수님을 멀리했을까?”

단순한 오해 이상의 이유가 있습니다.이 부분을 누가복음 4장이 더 자세하게 보여 줍니다.

📖 누가복음 4장 16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 예배에 참여하셨습니다.당시 회당에는 예배를 관리하는 회당장이 있었는데,그는 예배를 인도하고 사람 한 명을 지명해성경 본문을 읽게 했습니다.

지명받은 사람은 본문을 읽고,그 말씀의 의미를 설명한 뒤,회당장이 전체를 정리하며 예배가 마무리되는 것이그 당시 회당 예배의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도회당장이 예수님께 말씀하십니다.

“일어나서 성경을 읽으라.”

📖 누가복음 4장 17절을 보면,예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받으십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

이사야서에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담겨 있습니다.회당장은 아마도 예수님께

“그대는 이 메시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묻는 의미로 그 본문을 지정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글을 읽으신 후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 누가복음 4장 21절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즉,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의 말씀이오늘, 바로 너희 앞에서 이루어졌다.”

그러자 사람들이 놀랍니다.

📖 누가복음 4장 22절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그 입으로 나오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하더라.”

사람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했습니다.그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에 놀랐습니다.하지만 곧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우리 동네 사람이 아니냐?그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

그들이 알고 있던 “목수의 아들 예수”와지금 눈앞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사이의 간극을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읽으신 본문이 무엇이었습니까?

📖 누가복음 4장 18–19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내게 기름을 부으시고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읽으시며자신이 바로 이 예언의 성취자,즉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부분을 읽으신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이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즉, 예수님은 실제로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셨고,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하셨고,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셨습니다.이 모든 일들이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그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사야서가 예언했던 그 메시아의 사역이바로 예수님의 삶 속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사야가 말한 메시아는 바로 나를 가리킨다.너희가 본 이 일들이 바로 그 증거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이 사람의 지혜가 어디서 났느냐?”“이 사람의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그는 우리와 함께 자라난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보았음에도메시아의 의미를 오해했습니다.

“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한다면,로마의 속국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야 하지 않는가?”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한다면,경제적으로 가난한 우리를 부유하게 해야 하지 않는가?”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라면,하늘에서 만나처럼 떡을 내려서우리가 먹고 사는 걱정이 없게 해야 하지 않는가?”

이것이 유대인들이 바라던 메시아의 모습이었습니다.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메시아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겨자씨처럼 작고,가루 속에 감춰진 누룩처럼 오셨습니다.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그 속에는 생명이 있었고,그 생명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참된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은 실망했습니다.자신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와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그 결과가 바로 “예수를 배척하니라” (마태복음 13:57) 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메시아와 전혀 다르다.우리가 바라는 메시아와는 맞지 않다.”

사랑하는 여러분,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며 종종 같은 착각을 합니다.

“예수 믿으면 잘 살게 된다.”“예수 믿으면 걱정과 근심이 없어진다.”“예수 믿으면 사업이 잘 된다.”“예수 믿으면 사고가 없다.”

많이 들어보셨지요?

그래서 어떤 목사님들은 새 차를 사면 십자가를 걸어주며“이제 사고 나지 않을 겁니다.”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도 고난은 찾아옵니다.그러나 그 고난 속에서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고난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고난을 대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이제 누가복음의 이야기를 계속 보겠습니다.

📖 누가복음 4장 25–27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3년 6개월 동안 닫혀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엘리야가 그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고오직 시돈 땅 사르밧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을 때,그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예수님이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지만,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받은 자에게 임한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인데,어떻게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단 말입니까?그들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 누가복음 4장 28–29절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 말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

그들은 예수님을 낭떠러지로 몰아가 죽이려 했습니다.

왜입니까?예수님의 복음이 그들의 교만과 자부심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외쳤을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켰는데,왜 우리가 구원받지 못한단 말인가?”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너희의 노력이나 헌신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습니다.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알고,성경을 읽고,신앙의 열심을 내는 것 —그것이 구원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주어집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성령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끄집어내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진정 나의 구원자이십니다.예수님이 나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고,나를 위해 죽으셨으며,나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수고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며📖 에베소서 4장으로 함께 가 보겠습니다.

📖 에베소서 4장 13절을 보시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온전한 사람을 이루어,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여기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진 성경 지식이 우리의 믿음을 부요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배워가면서그 지식이 여러분의 믿음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습니까?

에베소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믿음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우리의 믿음은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집니다.이것이 바로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자라 어디까지 이르게 되느냐 —바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단지 지식으로만 예수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지식으로 아는 예수가 우리의 믿음 속에서 반응하고,그 믿음이 실제 삶 속에서 역사하게 될 때,비로소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제 마태복음 본문 마지막 절로 돌아가 보면,📖 마태복음 13장 58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믿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예수님은 아무리 말씀을 전하시고,아무리 능력을 보이셨다 하더라도,사람들이 믿지 않으면그곳에서는 더 이상 역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내 믿음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나는 단지 예수님을 아는 사람입니까,아니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까?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면,하나님께서 발견하신 보석과 같은 진주라면,밭에 감추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귀함을 알고세상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한다 할지라도그리스도 예수 한 분만을 붙잡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복음의 신앙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은 바로 이 믿음의 여정을 요약하고 있습니다.12장에서부터 이어져 온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이야기가모두 이 13장에서 결론으로 맺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51절부터 58절까지의 말씀은그 결론의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그리고 우리에게도 묻고 계십니다.

“너희가 나를 알고 있느냐?너희가 나를 믿고 있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우리가 그 물음 앞에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 주님.저는 주님을 압니다.그리고 주님을 믿습니다.”

이제 그 믿음의 고백으로우리의 마음을 모아 함께 찬송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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