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3:44~52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 seattleomc
- Oct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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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요, 그 영상을 촬영하다가 끊긴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원인이 뭘까?’ 고민하는 중에 잠정적인 결론이, ‘아, 복음성가를 한 예배 안에 두 개를 하면 안 되겠구나’ 이렇게 느껴졌습니다.그래서 우리 반주하시는 인내 집사님께 “절대 복음성가는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씀드렸고, 저도 헌금송 할 때는 찬송가 위주로만 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성가 가사를 묵상하고, 쭉 훑어보는 가운데 ‘너무 안 부르면 안 되겠다. 안 부르면 오히려 작사·작곡자에게 죄를 짓는 것 같다. 유튜브가 끊기더라도 해야겠다’라는 오기가 생겨서, 지난주와 이번 주 두 번에 걸쳐서 해 봅니다. 안 끊기겠죠?아마 잠정적으로 둘 중 하나만 잘 살리면 되지 않나 봅니다. 끊겨도 뭐, 어쩔 수 없고요.
우리 앞에 스크린에 나와 있는 성경 말씀 한번 봅시다.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에 이렇게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의 언어가 아닌 하나님의 언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해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그런 목적을 가지고 기록된 것이 아니라, 성경은 말씀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예를 들어,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성경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말씀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동의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말씀이 깨달아져서 기뻐서 뛰어오는 사람들을 저는 본 적이 있습니다. 전도사로 있을 때, 제가 가르치던 한 학생이 “전도사님, 말씀이 살아서 움직여요!”라며 기뻐서 뛰어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오히려 그 학생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어떻게 이 아이는 말씀을 듣고 이렇게 기뻐하는데, 말씀을 가르치는 나는 왜 이런 감동이 없을까?’그 생각 때문에 일주일 동안 끙끙 앓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 충격으로 인해서… 그러다가 어느 날, 이 말씀이 다시 한번 저에게 문을 두드리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그래서 그 말씀을 읽는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아, 말씀이 이런 말씀이었는데… 왜 내가 놓쳤을까?” 하면서 말씀 속으로 푹 빠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말씀을 준비하는 가운데 “왜 이 말씀을 놓쳤을까?”라고 자책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우리가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것은 우리의 성경 지식이나 지혜, 세상적인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려 주시고,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주실 때, 우리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말씀들을 깨닫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라도 말씀을 듣는 가운데 깨닫지 못한다면 고민하셔야 합니다.안타까워하셔야 합니다.“왜 나는 못 알아들을까? 왜 나는 깨닫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가지셔야 합니다.
천국이 우리에게 이같이 임했습니다.다시 말씀드리면, 깨닫지 못하는 상태로 천국이 우리에게 임했다라고 이야기합니다.그래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고, 천국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들입니다.또한 영적으로 회복된 사람들만이 천국을 누릴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는 우리의 죽은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예수를 믿는다’라는 말 속에는 우리의 죽은 영혼이 살아났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천국을 경험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시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면 굉장히 중요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정말 “놓치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할 만큼, 여러분들이 깊이 묵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44절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여기에서 주님께서는 천국에 대해 말씀하시며,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하십니다.밭 주인이 아닙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도 아닙니다.밭에 감추어진 보물, 그것이 바로 천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추어져 있다’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우리에게는 그것이 발견된 것이죠.천국은 원래 감추인 상태로 이 땅 가운데 들어섰지만,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발견됩니다.그래서 “천국이 발견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천국을 발견한 사람의 행동입니다.그는 천국을 발견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샀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일어납니다.옛날에 길을 가다가 돈을 주우면 얼마나 기뻐했습니까?“아유, 웬 재수야!” 하며 좋아했죠.그때는 주운 것이 내 것이었죠.
하지만 요즘은 큰일 납니다.길 가다가 무언가를 주우면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합니다.신고하지 않고 주머니에 넣었다가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습니다.이것이 한국의 법입니다.
그래서 습득한 물건은 반드시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고, 경찰서는 그 물건에 대해 공고를 합니다.“이 물건을 누구누구가 언제, 어디서 주웠으니 잃어버린 사람은 오시오.”그 공고 기간이 지나면 습득한 사람에게 그 물건이 넘어갑니다.하지만 그 기간 안에 주인이 나타나면, 주인은 감사의 표시로 5%에서 20%까지 사례금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이것이 대한민국의 법입니다.
최근 기사에서 보셨겠지만, 쓰레기 수거하시는 한 분이 러닝머신을 발견했습니다.그런데 너무 커서 실을 수 없자 분해를 했는데, 그 안에서 무려 4,800만 원이 나왔다고 합니다.이분이 얼마나 형편이 어려웠겠습니까?고물을 수거해서 되파는, 고물상에서 일하는 분이었죠.
그런데 이분이 이 법을 잘 알았나 봅니다.“1년 이하의 징역,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이걸 잘 알고 있었던 거죠.그래서 즉시 신고를 했고, 결국 주인을 찾게 되었습니다.
조사해 보니, 그 주인의 아버지가 치매 증세가 있었는데 평소에 “얘들아, 내가 돈을 숨겨 놓았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겁니다.하지만 아버지가 치매가 있다 보니 아들들은 대강 훑어보다가 돈이 안 나오니까 “아버지가 치매가 있으셔서 헛소리하신가 보다” 하고 넘어갔던 거죠.
이처럼 농부가 밭을 갈다가 우연히 보화를 발견한 것과 같은 일입니다.천국을 발견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그는 천국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았다고 했습니다.
그가 그 보화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그 기쁨 때문에 아낌없이 모든 소유를 팔게 된 것입니다.그는 밭을 사기 위해 판 것이 아닙니다.밭을 넓혀서 땅장사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밭 안에 있는 보화가 너무나도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환경이나 현실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습니다.우리 안에 있는 보화, 즉 예수님이 우리를 지배하시는 것이죠.이것이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러니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이 세상에 살지만,우리의 모든 것을 들여서 그 보화를 발견하고, 그 보화를 ‘사는’ 사람이라면더 이상 세상이 나의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그 보화가 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천국을 경험하게 되면,우리는 여전히 세상에 살지만이 세상이 우리를 즐겁게 하거나 위로하는 것이 아닙니다.이 세상에서 복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이 세상보다 더 귀한 보화이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 사람이 밭을 산 것은 밭이 목적이 아닙니다.보화가 목적이었죠.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우를 자주 봅니다.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면주님으로부터 믿음이나 충성, 헌신에 대한 대가나 축복을 기대할 때가 많습니다.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주님을 발견했느냐, 하지 못했느냐 —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그래서 이 사람은 결국 주님을 ‘산’ 사람이 된 겁니다.
그렇다면, 이 보화가 구약 성경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잠깐 살펴보겠습니다.구약 성경에서 이 보화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학개서 2장 6절과 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에서 보시면, 보화 되신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신다고 말씀합니다.모든 나라가 진동하고, 모든 나라의 보화가 이른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보화가 바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버렸습니다.마찬가지로 유대인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은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거나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베드로전서 2장 4절과 5절을 보면,
“사람에게는 버린 바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라.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진짜 보배, 그리스도 예수님이셨습니다.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세상이 버렸던 것입니다.마치 쓸모없는 돌처럼 취급했던 것이죠.
그래서 지금 여기서 말하는 ‘보물’은그리스도 예수님이라고 학개서와 베드로전서 모두 밝히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밭의 주인이 보물을 보관하던 그 방법을요.
만약에 ‘보물’이라고 한다면, 보물은 그에 맞는 대접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예를 들어, 아무도 열 수 없는 금고 안에 보관한다든지,아니면 그 보물의 가치에 맞는 귀한 상자에 넣어 두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여러분들은 보물을 어떻게 관리하십니까?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다이아몬드나 금붙이 같은 것들을그냥 서랍에 아무렇게나 넣어 두십니까?누구나 와서 볼 수 있게 두나요?아니죠.대부분은 아이들이 손대지 못하는, 안전한 곳에 보관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밭의 주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밭의 주인은 그 보물을 별로 쓸모없는 것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하지만 밭을 갈던 사람이 볼 때는 그것이 너무 귀했습니다.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살 만큼,그 보화는 그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이 바라봤던 그리스도 예수의 모습은가치 없고, 쓸모없고, 그냥 아무렇게나 팽개쳐도 되는 존재처럼 여겨졌습니다.하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그분이 우리의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살 만큼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그들은 메시아가 오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흥시키고,이스라엘을 해방시켜서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길 바랐습니다.그것이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오신 목적은 달랐습니다.주님은 영혼을 살리기 위해,영혼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길을 여시기 위해 오셨습니다.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전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그래서 결국 보배 되신 예수님을 밭에 아무렇게나 버려 두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여러분이 무인도에 갇히게 되었다면,그곳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보석이나 금, 명품 가방 같은 것들입니까?아니죠.그곳에서는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이 가장 소중하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그렇게 오셨습니다.주님은 우리가 눈을 떠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그래서 결국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버린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마태복음 13장 45절과 46절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남에,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진주를 다루는 전문가, 진주 상인이 등장합니다.그는 당시 값비싼 진주를 취급하는 사람이었을 것이고,여러 진주를 가지고 있었으며 재산도 꽤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는 더 좋은 진주를 찾기 위해 발로 뛰고 수고했습니다.그리고 그 노력 끝에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그는 너무 기뻐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아 그 진주를 샀습니다.이것이 이 말씀의 요지입니다.
이 비유는 앞의 밭에 감추인 보화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 두 비유를 “쌍둥이 비유”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 말씀은 조금 다릅니다.예수님은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즉, 천국이 진주 자체가 아니라, 진주를 찾는 장사와 같다는 것입니다.
만약 천국이 진주라면, “천국은 값진 진주와 같다”고 표현하셨을 것입니다.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천국은 좋은 진주를 찾는 사람, 그 장사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밭을 갈던 농부는 우연히 보화를 발견했습니다.그러나 진주를 구하는 장사는 자신의 노력과 헌신으로,시간과 돈을 들여 진주를 찾아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노력으로 이 진주를 구하게 된 것입니다.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만일 천국이 좋은 진주와 같다라면,내 노력으로 천국을 얻을 수 있는 건가?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천국이 주어지는 건가?”이렇게 잘못된 오해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천국은 우리의 노력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금이나 은, 우리가 가진 어떤 보배로도하나님의 기쁨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유는 앞의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와는 다른 비유입니다.비슷해 보이지만,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 질문이 생깁니다.그렇다면, 이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는 누구일까요?앞서 살펴본 학개서와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떠올려 보면,그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배와 진주는 누구입니까?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백성으로 삼기 위해시간을 투자하시고, 발품을 팔아서 우리를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발견하셨을 때,그의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다시 말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내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
어떤 분은 예수를 믿는 집안에 시집가서 믿게 되었을 수도 있고,또는 형제나 자매, 가족 중 누군가가 먼저 믿어서그 전도를 통해 믿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녀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이처럼 예수를 믿게 된 계기는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의 관점,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다릅니다.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하나님께서 준비하셨고,하나님께서 우리를 얻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얻기 위해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연히 구원받은 자녀가 아닙니다.하나님의 은혜가 개입되지 않았다면,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도,그분의 백성으로 부름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개입되었기 때문에우리가 부활을 깨닫고,그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선 목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한번 말씀을 봅시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누가복음 15장 4절)
이 목자의 마음이 바로좋은 진주를 찾아 헤매는 장사꾼의 마음입니다.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 이후 말씀을 보면,목자가 양을 찾은 후 기쁨으로 돌아와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벌입니다.양 한 마리를 찾은 기쁨이 그렇게 큰 것이죠.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들인 수고보다그 기쁨이 더 컸습니다.그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께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아멘.
이처럼 목자의 마음은좋은 진주를 찾아 헤매는 진주 장사의 마음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종종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잊고 살아갑니다.예배를 드리고 나면 세상 이야기로 돌아가고,하나님 마음에 맞지 않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그러다가 주일에 말씀을 들으며“아, 내가 이렇게 귀한 존재였구나”다시 깨닫게 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자주 잊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다릅니다.잘나가는 아이도, 부족한 아이도,하나님께는 모두 소중한 자녀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볼 때,성적이나 외모로 사랑을 구분하지 않듯이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주눅들 필요가 없습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시기 위해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은 이 사실을 보지 못합니다.영적인 귀가 닫힌 사람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밭에 감추어진 것이 보화인지, 그냥 돌멩이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그리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얼마나 귀한 분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이 비유들을 통해 주님은 “같은 세상”이라고 말씀하시지요.같은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십니다.그렇다면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진주 장사처럼 좋은 것을 찾아 산 사람들,곧 우리 믿는 자들은 어떤 존재입니까?
‘밭의 비유’로 다시 돌아가 보면,우리는 보화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깨닫게 되자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 사람들입니다.이해되시죠?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발견하신 극히 좋은 진주,하나님의 눈에 보물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눈이 열리고,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게 됩니다.그리고 세상을 바라볼 때,이제는 세상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감추어진 천국,곧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분을 발견하니까, 우리의 모든 것을 팔아서 그 밭을 산 것입니다.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밭 안에 있는 보화 — 곧 그리스도 예수가 중요한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그분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화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보화가 있다면 밭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보화가 있으면 밭은 또 살 수 있지 않습니까?보화가 있느냐, 없느냐 — 그것이 진짜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대한 관심을 내려놓고,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며, 그분만을 경배하게 됩니다.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세상을 팔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밭을 사고 그 안의 보화를 발견했기 때문에세상은 더 이상 우리의 기쁨의 대상이 아닙니다.이제 우리의 즐거움과 기쁨은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이 비유가 보여주는 것은,성도들은 더 이상 세상이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세상은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그가 모든 소유를 팔아 밭을 샀다”라는 의미는그의 눈이 열렸다는 뜻입니다.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뀐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세상에서 위로를 얻으며,세상의 방법으로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이 열리자,그 밭 안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가 더 귀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세상은 더 이상 우리에게 힘이 되지 않고,우리의 기쁨도, 가치도 되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밭을 산 사람들,곧 세상 대신 그리스도를 택한 사람들입니다.이것이 성도의 모습입니다.아멘.
이제 제자들의 이야기를 보겠습니다.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비유의 의미를 묻습니다.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비유를 직접 설명해 주십니다.
첫 번째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두 번째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예수님이 굳이 설명하지 않으셔도 될 것처럼 보이지만,주님은 일부러 설명을 덧붙이셨습니다.
왜냐하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천국의 개념을 깨닫기 위한 기초적인 비유이기 때문입니다.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머지 비유들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예수님께서 친히 해석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도제자들이 직접 나아와 “주님, 이 비유의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예수님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합니다.제자들은 모두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라지의 비유’와 연결된 결말의 비유,곧 물고기 그물의 비유를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7절과 48절 말씀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으니,그물이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이것은 천국 비유의 결말, 곧 심판에 대한 비유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물’은 우리가 흔히 아는 투망이 아닙니다.어깨에 메고 던져서 가까운 고기를 잡는 그런 그물이 아니라,두 척의 배 — A와 B — 사이에 길게 그물을 걸고그물 밑에 추(錘)를 달아서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저인망(底引網)을 뜻합니다.
즉, 남김없이 모든 고기를 다 끌어올리는 그물입니다.이 단어가 바로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무엇을 뜻할까요?하나님의 심판에서는 빠져나갈 자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는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모든 존재가 하나님의 심판의 그물 안에 걸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지 않을 영혼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말이 조금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로 옷 입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잔치 자리에 왜 예복을 입지 않고 왔느냐?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바로 이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제일 좋은 옷이라고 생각했습니다.다른 예복으로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고 여겼지요.“이 옷은 방금 세탁해서 깨끗하고, 다릴 필요도 없고,이 옷이면 하나님 앞에 나가도 되겠지.”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잔치 문 앞에서 걸려 버립니다.그들의 생각과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도“나는 떳떳하다,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교만한 착각이었습니다.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책망을 받게 됩니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왔느냐?”
이처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그물 안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로 옷 입은 자들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며 우리의 행실이나 말,삶의 모습이 부족하고 부끄럽게 보일지라도,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었기에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부르신다 할지라도담대히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비록 부끄러운 모습이지만,주님께서 부르시니 제가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는 행위나 공로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라는 옷을 입혀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바리새인들이 세리(세금 징수인)를 어떻게 봤습니까?그들은 세리를 죄인 중의 죄인으로 여겼습니다.“하나님, 나는 저 세리 같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이렇게 말할 정도로 교만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심판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3장 49–50절을 보십시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불모지에 던져 넣으리니,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여기서 말하는 ‘악인’이란 누구입니까?밭에 감추인 보화,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좋은 물고기’, ‘의인’이라고 하신 사람들은비록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쓸모없어 보일지라도,그 밭 안의 보화가 귀한 줄을 알고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산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입니다.
그리고 50절에 나오는 표현 —
“이를 갈리라.”
이 말은 ‘이빨을 간다’는 뜻입니다.스데반이 설교할 때,유대인들이 그를 향해 이를 갈았다는 표현이 나오지요.같은 단어입니다.
그만큼 분하고, 억울하고,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부했던 자들이심판대 앞에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때,얼마나 분통했겠습니까?
하지만 천국을 상속받은 우리들에게는 그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찬송가에서 노래하듯이,**“면류관은 주께서 우리에게 씌워 주신 것”**입니다.그리고 그 면류관을 우리는주님 보좌 앞에 다시 벗어 놓습니다.
왜입니까?
“내 공로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주님이 주신 것이니, 이 면류관을 제가 쓸 자격이 없습니다.”
이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다시 내려놓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도에게는 세상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우리 안에서 발견된 보화, 곧 예수 그리스도가 귀한 것입니다.
보화 되신 주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좋은 진주를 찾아 헤매던 장사꾼 되신 주님께서우리를 찾아내시고,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하셨고,우리 또한 그분을 알아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비유들 속에 담긴 복음의 핵심입니다.
(뒤에 이어지는 비유도 있지만, 시간이 길어 생략하겠습니다.혹시 그다음 비유의 의미가 궁금하신 분들은성경공부 시간에 조용히 제게 오셔서 물어보십시오.그때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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