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3:1~9 예수계서 비유로 말씀하시더라
- seattleo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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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리 교회에 계시는 어떤 집사님 한분이 그런 얘기를 하셔요.
죽어서 천국 가는 거 바라는 것보다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면서 살지 못하면 아, 그거 참된 신앙이 아니다.라고 얘기를 하십니다. 제가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야, 어떻게 이런 신앙이 있으실 수 있을까? 여러분들 동의하십니까?
아멘. 아멘. 죽어가는 천국 고대하지 마시고이 땅에 살아서 천국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천국을 누리려면요. 어, 먼저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받지 않고는이 땅에서이 고난스럽고 고통이고 힘든 세상에서 천국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아, 그래서 여러분들이 일차적으로 천국을 누리시려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또 그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우리가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게 복이다라고 시편은 누누히 우리들에게 얘기를 하죠. 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복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때로는 좌절하고 또 때로는 낙심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말씀 속에서 힘을 얻습니다. 아,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복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이 땅에 살아가면서 천국을 누릴 수가 있는 거죠.
예수님께서 어 최초로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라는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뒤어서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첫 메시지 또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태복음 4장에 가시면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고 또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눈먼 자 병든 자 가난한 자를 치료하시는 실질적으로 그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 것을 아 그의 삶 가운데 아 그의 행동 가운데 나타내 주고 계시죠. 그리고 나서 산상순훈이 5장에서 7장까지 이어지는데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에서도 우리들이 아주 중요한 부분은 뭐냐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신 것처럼이 땅에서 내가 하나님 말씀의 길을 기울이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질 때 하나님의 뜻이 우리 가운데서이 땅에서 펼쳐지는 것이라고 주기도문에서 우리들이 함께 묵상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가장 큰 이유는 우리들에게 천국을 주시기 위함이셨고 또 부활하신 이유도 우리들에게 천국을 주시기 위한 아 그러임을 우리들이 깨닫게 됩니다. 앞서서 마태복음 11장과 12장에서 예수님께서 이적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께서 메시아됨을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셨지만 아 그들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한다라는 제목을 걸어서 예수님을 배척하고 예수님을 비방하고 예수님을 몰아내는 것을 우리들이 보았습니다. 아 그런데 오늘 13장에서는 11장과 12장과 13장이 따로 독립되어져 있는 장이 아니라 함께 아 그 스토리 전개되는 내용이 연결되는 어 부분들인데 13장은 11장과 12장에서 나타났던 모든 일들을 잘 설명을 해 주시는 장이 13장이 되겠습니다. 13장을 가르쳐서 우리는 다른 별명을 붙이기도 하는데 13장을 가르쳐서 우리는 뭐라고 얘기를 하면은 천국장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가르쳐 우리는 사랑장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듯이 마태복음 13장도 천국장이다.이 발음이 경상도 사람들은 천국장이 잘 안 되죠. 예. 천국입니다. 청이 아니라. 예. 아무튼 13장은 여러분들이 기억하시기 쉽게 아 천국에 관한 그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성경에서 가장 많은 비유가 등장하는 그러한 장이기도 어 합니다. 그런데 천국에 대한 설명을 주님께서 13장에 이렇게 쭉 아시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천국 또 우리가 기대했던 그러 천국의 모습이 아니라 아 마태는 다른 개념에서이 천국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시면 되게 될 되겠습니다.
13장은 11장과 12장과 연결이 되는데 12장에는 아 절대적인 다수 아 제자들을 제외한 절대적인 다수의 반대 속에 또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위협 속에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으로 가셔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배를 띄워서 바닷가에 앉으시고 배 속에서 앉아서이 말씀을 전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니까는 예수님께서 뭐 다른 어떠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핍박과 수많은 사람들이 잡으려고 하는 그 와중에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어가기 위해서 사람들이 적건이 불가능할게끔 아 배를 띄웠다. 바다에 앉으셨고 많은 사람들은 애벽가에 써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이런 장면이 연출이 됩니다. 다른 어떤 의도가 없습니다. 그러니까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많은 사람들의 극렬한 반대 속에서 예수님이 이런 모습을 갖췄다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1절과 3절 말씀을 보시면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 그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아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했었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다. 이렇게 되 있습니다. 그러니까는 그날에 여기서 큰 무리들이 그 얘기로 몰려들었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큰 무리들은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핍박하는 무리들 예수님을 배척하는 무리들이 예수님께로 왔다라고 여러분들이 생각을 아시면 어 될 것 같습니다. 아 예수님은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듯이 심판주로이 땅에 오십니다.
심판 주로 오셨다라는 그 얘기는 뭐냐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을 불러 모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시고 또 하나님의 나라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심판주로 오신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으는 일이 시작은 아주 겨자시처럼 자그한 일이지만 나중에는 새들이 깃뜰 정도로 큰 가지를 어 맺게 되고 어 그리고 시작은 아주 작은 것이었지만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것이 천국 비유에 관한 중요한 내용입니다. 아 또 다른 말씀에서는 가루서 넣은 누룩처럼 아 밀가루 속에 들어가서 누력이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그 밀가루 만족 전체가 부풀러 올랐던 것처럼 천국은 아주 조그만하게 시작을 하지만 나중에는 커다랗게 확장된다라는 것이 예수님의 설명입니다.
아 결국은 주님께서는 심판주로 오셨지만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완성함이 어떤 것이 되냐면은 하나님 나라가 중심이 되고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이어짐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가 완성된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아까 초반에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린 것처럼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려면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아야 된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게 완성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성도들이 지금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여기에 하나님의 다스리심,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고 그 말씀을 따르는 것 이게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처럼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하심, 하나님의 다스리심 앞에 순종하기를 원하는 것. 예수님은 이것을 위해서이 땅에 오셨고이 땅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말씀 앞에 순종을 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다라고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아 그런데 유대인들의 오해가 여기에서 발생을 합니다. 유대인들은 어떤 오해를 가졌냐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불러 모으신다라고 얘기를 했는데 자신들은 이미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는 예수님께서 불로 모으실 필요가 없다는 거죠. 메시아는 그냥 불로 몰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불로 몰 필요 없이 그냥 심판주로 오시면 된다. 우리를 고통 가운데 빠져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심판을 하고 우리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해방되기를 원하는 것.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금 와 있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유대인들의 생각이었다는 것이죠.
유대인들의 측면에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은 그 말이 또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핍박 가운데 있는 유대인들을 구원시키고자이 땅 가운데 메시아로 오신 것이 아니라 사망이 없지만 그물에 그늘에 앉아 있는 아 소망이 없는 자들 또 죽음 앞에 있는 자들 그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오셨고 그렇게 우리를 부르셨고 부르신 그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고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우리가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유대인들의 착각, 유대인들의 잘못이 바로 여기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가 마태복음 13장을 오늘 묵상을 하면서 13장에서 묵상해야 될 가장 중요한 그러한 내용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통치하심, 하나님의 다스리심 앞에 순종할 때 하나님 나라가 완성이 되는구나.요 요 내용으로 지금 마태복음 13장이 이렇게 어 되어져 있다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마태가 아 13장 9절에서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눈이 열렸고 영적인 귀가 뜨였다면이 하나님의 메시지에 예수님의 메시지에 길을 기울여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거죠. 아, 그래서 오늘 본문 속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면 뿌리는 비유로 되어 있습니다마는 초점은이 뿌리는 사람에게 있지 않고 뿌려진 씨의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뿌려진 씨가 어떻게 어 그 결과를 맺는가에 대해서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는이 씨는 어디에 떨어졌느냐에 따라서 각각 그 운명이 달라진다라는 것을 말씀하는게이 비유의 초점인 거죠. 아, 그래서 다 같은 말씀이고 다 같은 씨지만 아, 어떨 때는 길가이기 때문에 그 씨가 결실을 하지 못하고 어떨 때는 돌바지기 때문에 그 씨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어떨 때는 가시밭에 떨어졌기 때문에 그 씨가 결실을 맺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 4절을 보시면 4절에 있는 말씀을 19절에서 해석을 해 줍니다. 먼저 4절 말씀을 보시면 더러는 길가에 떨어짐에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에 대한 해석이 19절에 등장을 하는데 19절을 보시면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에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길가에 떨어졌는데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는 씨가 전혀 피를 내리지 못하고 말하자면 심기우지 않았다라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19절에서 주님께서을 하기를이 씨를 비유해서 천국의 말씀으로 비유를 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는 씨가 우리들에게 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선포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밭이 길가였다라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졌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들을 여기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공중의 새는 사탄을 의미합니다. 그 말씀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가져가는 것이죠.
그러니까는 말씀이 받는 우리가 길가라면 하나님 말씀이 아무리 떨어졌다 할지라도 우리 마음속에 뿌리 내리기 이전에 사단이 그 말씀을 가져간다라는 것을 여기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은 말씀으로 은혜를 누리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은 말씀이 일주일 내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지켜서 내내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분들도 있는가 하면 똑같은 말씀을 똑같은 시간에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이 문 열고 나가자마자 부엌에서부터 부터 벌써 인상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부엌이고 뭐고 상관이 없이 그냥 아 소반에 얘기한 것처럼 천국을 누리면서 일주일 내내 그 말씀 가운데서 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그러한 분들이 있다는 것이죠.이 말씀이 지금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 말씀이 뿌리를 내리게 내리기 전에 사탄이이 말씀을 먹어 버렸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여러분들 이제 씨를 다 뿌리셨고 지금 막 수학 처리지 않습니까?
근데 저희 집은 잘못 어 걸음을 줬는지 아무리 물을 줘도 수학이 결실이 되지 않아서 물감만 지금 낭비하고 있는데 그래도 식물이 생명인지라 물값이 낭비돼도 계속적으로 어 죽어 있습니다. 아 그런데 씨가 떨어져도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길가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딱딱한 곳에 떨어졌다는 거죠.
딱딱한 곳에 떨어졌다라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냐면은 기경을 해야 됩니다. 기경을 한다는 말은 봄에 씨를 뿌리기 전에 딱딱한 돌처럼 굳어져 있는 밭을 한번 이렇게 갈아엎어 줘야 된다는 것이죠. 그냥 딱딱한 곳에 씨를 뿌려도 뿌리를 내리고 결실을 한다라면 뭐 기경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노동을 들여서. 그러나 그렇지 않기 때문에 농부들은 이런 봄에 소를 이끌던지 아니면 기계를 사용하든지 딱딱해진 그 밭을 가는 그 작업을 먼저 한다는 거죠. 씨가 떨어졌을 때 뿌리를 잘 내리게 하기 위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아 그런데 땅은 이처럼 굳어져 있어도 갈아없고 기경을 해서 다시 부드러운 흙으로 만들어 주면 되지만 문제는 뭐냐면 돌처럼 굳어져 있는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기경을 하라는 거죠? 어떻게 갈아없는 것이죠? 우리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관계를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서 우리가 마음이 참 굳어져 있는 그러한 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요. 목사로부터 은혜도 받지만 목사로부터 여러분들이 가장 큰 시험을 받습니다. 아 목사가 하는 말이 저건 나한테 하는 얘기야 하고서 획돌아서 그 마음을 풀 길이 없는 겁니다. 아, 이처럼 은혜도 받지만 시험도 여러분들이 받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한 가지 생각하셔야 될 것은 뭐냐면 목사는 그냥 목사로 사람으로 제껴 두시고 목사가 여러분들에게 전하는 말씀의 길을 기울이십시오. 그냥이 메시지는이 말씀은 아 저를 대어신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다라고 생각하시고 저의 인격적인 면이나 생활적인 면은 그냥 뒤로 제끼시고 나중에 뭐 밖에서 따지시든지 어떻게 하시든지 상관이 없겠지만 우리가 예배 시간에만큼은 하나님의 말씀의 길을 기울이자는 것이죠. 아 그래야만이 우리의 굳어져 있는 마음밭이 기경이 됩니다.
갈아엎어지게 됩니다. 이것을 호세아서는 뭐라고 얘기를 했냐면은 호세아에서요. 비슷한 그 얘기를 하는데 10장 12절을 보시면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너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이내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너희들의 마음을 기경하라는 얘기죠.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빛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너희 무을 기경하라라고 얘기를 하면서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는 땅은 우리가 기경을 해서 갈아엎으면 그게 부드러운 땅으로 되지만 우리의 마음이 굳어져 있는 것은 어떻게 기경을 갈아엎어야 되냐면은 여호와를 찾으라는 겁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길을 교류라는 겁니다. 그래야만이 우리의 굳어져 있는 마음이 풀린다라고 이야기를 어 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나서 두 번째로는 5절과 6절에 말씀을 하고 있는데 더르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옷싹이 나오나 해가 더든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주님께서는이 말씀을 20절과 21절에 이렇게 해석을 해 주셨습니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봤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다. 이렇게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뿌리가 없어서 말랐다라는 것을 환난이 오면은 곧 넘어지는 사람이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는 시작했다고 해서 다 완성되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씨를 뿌렸다고 해서 다 결실되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모든 것들이 다 완성적으로 가만히 있어도 결실을 맺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이 말씀을 기쁨으로 받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아 그 뿌리가 없으므로 환난과 어려움이 만날 때 그 뿌리가 마르는 것처럼 곧 그 어려움 속에서 좌절하고 포기하는 그러 신앙 생활을 하는 그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떨 때는 찬양할 때도 할렐루야를 그렇게 수도 없이 외치는 그런 사람들이 그냥 사람들의 조그만한 실수 아니면 사람들의 조그만한 잘못 이런 걸로 인해서 그냥 핵 돌아서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아마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여러분들은 많이 벗을쓰리라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신앙의 어떤 기복이 굉장히 심하다는 거죠.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지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다스릴 때는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는데 사람의 말의 길을 기울이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기복이 굉장히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신앙을 구별하려면 환난 때 어려움을 만날 때 그 사람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저 사람은 참된 신앙입니다. 아니면 기복 있는 신앙인이다. 이렇게 우리는 판단을 할 수가 있습니다. 아, 그래서 어려움을 만날 때 우리가 어떤 상황으로 어떤 어 그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느냐 이건 너무나도 우리들에게 중요한 그러 내용이라는 거죠. 그래서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바퀴가 일어날 때는 곧 넘어지는 자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신앙의 뿌리가 깊으면 아무리 큰 역경이 우리 가운데 온다 할지라도 견뎌내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뿌리가 깊으면 아마 아무리 힘든 일이 우리에게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믿음으로 그 어렵고 힘든 일들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아, 제가 여러분들에게 수요 예배를 참여하라라고 자꾸 이제 간권하는 것은 뭐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어 체험하고 우리의이 구원의 기쁨, 감사, 하나님에 대한 영광 이런 것들을 잘 나타내는게 찬양이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찬양 가운데서 나의이 찬양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고 또 우리와 찬양과 함께 기도도 하지 않습니까? 기도하면서 우리들은 응답하시고 응답하시지 않고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 내가 지금 기도하는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서 있다라는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기도합니다.
그래 하나님 이거를 꼭 해결해 주셔야만 됩니다. 꼭 응답해 주셔야만 됩니다.
응답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으로서 있다는 것,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있다는 거 이것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들은 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수요 예배를 자꾸 이렇게 강건을 하게 되는데 여러분들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만약에 신앙의 뿌리가 깊지 아니하면 우리는 어떠한 환난, 어떠한 역경 이런 것들이 닥치면 금방 무너져 내리는 그런 신앙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것을 이기려면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알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레미야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3장 29절을 보시면 예레미야가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서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의 말씀은 불처럼 우리의 모든 것들을 태울 수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방망이처럼 딱딱한 단단한 것들도 깨뜨려 부을 수가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굳어져 있는데 우리가이 마음을 굳어져 있는 마음을 단단한 마음을 부서뜨리지 아니한다라면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지 않는 거죠. 하나님 말씀 앞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역경이 온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들지 아니한다라면 뿔이 내리기 전에 말라서 죽어 버리는 그런 신앙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를 고칩니다. 여러분들 병 중에서 좀 위험한 병이 있죠. 동맥 경화라는 겁니다.
가장 위험한 그런 병인데 뭐 어디 뭐 팔이 무슨 문제고 무슨 문제가 생기고 그런 것보다도 동맥 경우는 우리 몸속에 흐르고 있는 동맥 속에서 피가 굳어져서 이게 생기는 거지 않습니까?
그러면은 심장이 마비가올 수 있고 내추이 생길 수 있고 이런 다른 2차 3차의 병들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피를 깨끗게 하려고 여러분들 아스피린도 드시고 뭐 또 다른 영양제도 드시고 하면서 피가 잘 우리 몸 안에서 이렇게 흐르게끔 그런 어 보조제를 드시는 거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몸이 이렇게 굳어지면 우리가 영양제를 찾아서 그러듯이 우리의 심령이 굳어질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단단해진 것들을 깨뜨리라는 겁니다. 부서뜨리라는 것이죠. 그리고 나서 세 번째로 7절에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계시는데 더르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짐에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라고 이야기를 하는데이 말씀을 22절에서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마태복음 12장에 이야기를 했을 때 귀신 들린 사람을 쫓아 내보냈더니 그 안에 비어 있게 있 있는 것을 어 마귀가 보고 이전보다도 더 강한 애들 일곱 명의 귀신을 불러다가 그 마음을 지배했다고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야기를 하는게 똑같습니다.
지금 여기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땅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이 돼 있어야 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마음이 가득차 있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 지금 아무것도 비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시가 거기에 등장을 해서 가시가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씨를 뿌린다 할지라도 그 가시로 인해서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겁니다. 아, 제가 풀을 뽑을 때마다 참 여러 가지요 말씀을 생각을 하면서요 말씀을 굉장히 묵상을 하는데 아 보통 풀이 잡초가 어디에 많이 나냐면 아무것도 심기지 않는 땅에 잡초가 많이 등장을 합니다. 잔디라도 심겨져 있으면요. 그 땅에 잡초가 침범을 못 해요. 잘 뭐 어 가끔 확인을 하겠지만. 그러나 잔디도 없고 다른 뭐 그 채소 같은거나 이런 식물들이 없이 빈 땅 노는 땅 이런 곳에 보면은 꼭 잡초들이 아주 무성하게 자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항상 뽑으면서 그렇게 생각하죠. 아이고 내가이 땅에 아무것도 안 심었더니 얘네들이 이렇게 와 있구나라는 겁니다. 지금 아무것도 없는 빈땅에업자 지금 가시가 그 안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비워 주셨다면 그 마음속에 우리는 무엇을 채워야 되냐면은 그리스도 예수로 반드시 채워 넣어야 됩니다. 그러니까는 그리스도 예수가 내 마음을 다스릴 때 가시가 침범을 하지 못하는데 그리스도 예수가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니까 가시가 침범해서 거기서 자라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 말씀을 듣기는 듣지만 가시 줄기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결실을 못 하고 있는 거죠.
세상의 염려와 세상의 근심으로 갇았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의 염려가 왜 생깁니까? 세상의 근심이 왜 생깁니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게 받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그러한 현상들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우리들에게 염려하지 말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너의 무거운 짐을 다 내게 맡겨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맡기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주님께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갈 때 염려와 근심이 자라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할지라도 그 말씀이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죠. 땅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거 같습니다. 또 흙도 문제가 없는 거 같습니다. 근데 돌멩이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속을 누가 지배하느냐에 따라서 지금 그 씨가 떨어졌을 때 결실을 맺느냐 안 맺느냐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8절을 보시면 8절에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은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짐에 어떤 것은 100배, 어떤 것은 60배, 어떤 것은 30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렇게 했는데 23절에서 주님께서요 말씀을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땅이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100배, 어떤 것은 60배, 어떤 것은 30배가 되었느니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는 좋은 땅에 뿌려졌다라는 것은 듣고 깨달은 자다라는이 의미를 여기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본문에서 벗어나서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19절에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달지 못한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달려는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신 그러한 사람들만 천국 백성들만 하나님의 말씀을들을 때 깨달은 자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여기에서 23절에 보시면 여기서 깨달른다라는이 단어가 아주 중요한 그런 단어인데 깨달른다라는이 말은 합한다라는이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달른다라는 얘기는 하나님의 말씀과 내가 합한다라는이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이게 깨달른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통하여 다른 데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합했을 때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서 뿌리를 내리게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주님 안에 있고 주께서 내 안에 있다라는 이러한 고백이 생기게 되는 거고 내가 주님께 가까이 갈 때 주님께서 나에게 가까이 오신다라는 이러한 고백이 우리들에게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합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네 가지의 비유를 보았는데 13장에서 결국은 주님께서 천국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시는 그러 말씀은 뭐냐면 앞서 이야기를 했던 11장과 12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반대 아 유대인들의 거부 여기에 대한 13장에서 그들을 향한 꾸중이고 또 그들을 향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명이고 그들의의 의 인문에 대한 그들의 질문에 대한 하 나라에 대한 대답이다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시면 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처럼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도래할 그러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릴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꼭 기억하시고 예수님께서는 결국은 해방자로이 땅에서 오셨고 또 해방자로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건지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시기를 합니다. 과거에는요. 지금은 뭐 어 영토라는 개념이 우리가 정치 경제 시간이었나요? 사회 시간이었나요? 아, 정체 경제 뭐 시간에 공부하다 보면 국가의 개념 해 가지고 영토가 있고 거기에 국민들의 어떠한 주권이 있고 어 그리고 또 민 있고 뭐 이런 세 가지 3대 요소 해서 배운 적이 있는데 지금 현대를 살아갈 때는이 영토라는 개념이 우리들은 굉장히 강합니다.
그래서 천국도 영토라는 개념으로 우리들이 생각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 생각하면 내가 죽어서 가는 나라로 생각할 수가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이 성경이 쓰여질 당시에 영토라는 개념은 통치의 개념입니다. 다스림의 개념입니다. 왜냐면 전부다 다 왕의 것이었어요.
왕의 소유였어요. 그러니까는이 용토라는 개념이 없었어요.이 성경이 쓰여질 때는. 그래서 어 용토라고 얘기할 때는 통치의 개념, 다스림의 개념이 더 강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를 할 때도 어떤 영토의 개념보다도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그 통지의 개념이 더 강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보면은 신앙인들이 하나님 내가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헌신하고 수고하고 봉사했는데 여기에 대한 신앙의 보상이 뭡니까?라고 라고 이야기를 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아, 그래서 신앙의 보상은 없습니다라고 얘기를 하면 그러면 죽어서 천국에서 좀 좋은 곳을 차지할 수 있나요?
이런 얘기까지도 하세요. 그리고 어떤 목사님은 뭐 천국에가 보니까 개털 모자를 썼다고 그리고 뭐 금면류관을 썼다고 그래요. 누가 개털 모자를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러나 확실한 것을 우리 모두가 다 근면 유관을 쓴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성경에 이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상급을 좋아합니다. 천국 들어가면 3천층이 있다고 그러는데 그래도 제일 좋은 주님과 제일 가까운 자리로 내가 이렇게 수고하고 헌신을 했으니까 그 자리를 아이에게 주시겠죠. 이런 생각을 우리는 늘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참 깨뜨려지지 않는 부분인 거 같아요. 이거 빨리 깨뜨려야 됩니다. 왜냐면 우리는이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데 초점을 둬야 되고 중점을 줘야 되는데 우리가 가서 그 나라에서 살아갈 것만 생각을 해서는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우리가 말씀을 맺으면서 다시 한번 더 결론적으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린다는 것은 결국은 예수를 믿는다라는 것은 무기를 하냐면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겁니다. 과거에 나는 완전히 없어지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나로 바뀌는 것 이것을 가르쳐서 예수를 믿는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들 예수를 믿죠?
아멘. 좀 시원 찾는 거 보니까 과거에 나를 버리지 않으려고 하는듯한 그런 모습인 거 같은데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라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서 의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의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과거의 나와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롭게 된 나가 구분이 안 되면 우리는 아직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떨어졌을 때 어떤 상황인지를 잘 모르는 그런 경우가 됩니다. 여러분들 하나님 말씀에서 순종하시고 거기에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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