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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10:24~33: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앞을 보시면 아주 현란하죠.사람은 온데간데없고, 배경만 번쩍거리는 느낌이 듭니다.

오늘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고난주간(Holy Week)이 시작되는 날입니다.그래서 이번 주간 동안은 특별히 기도회로 모이기보다는,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보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더 의미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이번 한 주 동안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즉 성막의 비밀과 그리스도의 연관성에 대해 함께 묵상하려고 합니다.성막은 왜 주어졌는가, 예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그리고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아마도 이번 주간은 본당과 친교실을 오가며 함께 묵상하게 될 것입니다.본당이 추우면 친교실로, 친교실이 좁으면 다시 본당으로 이동하면서자유롭게 묵상하는 한 주간이 될 것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성막을 실제로 만들 수 있도록 해볼까도 생각했지만,이 땅이 우리 땅이 아니고, 교회도 우리가 소유한 공간이 아니다 보니실제 모형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하지만 그림 자료를 함께 보며 성막이 예수님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묵상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깊은 은혜의 고난주간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 주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오늘 주제는 바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입니다.과연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또 우리는 어떤 모습과 어떤 마음으로 세상 속을 살아가야 할까요?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무엇을 보게 될까요?또 우리는 어떤 영향력을 그들에게 나타낼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셨고,또 그들을 세상 속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세상 속으로 보낼 때,그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어떤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을 대해야 할지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사랑을 나누고,섬기고,봉사하고,희생하면,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환영하고 칭찬할 것이라 예상하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렇게 살아도세상은 너희를 조롱하고, 핍박할 것이다.알아주지 않을 것이다.반대로 반응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사랑을 베풀고, 희생하고, 헌신하면사람들에게 감사받고 위로받는 것이 당연할 것 같지만,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핍박받는 제자들, 그러나 잊지 말라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며 말씀하십니다."세상이 너희를 조롱하고 핍박하더라도,너희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말라."

지난주에도 나누었듯이,**“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말씀처럼우리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지혜와 순결함을 잃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그 지혜와 순결함이 없으면,우리는 우리를 보내신 주님의 뜻과 목적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대가 없는 삶, 그러나 하나님이 보신다

우리가 땀 흘려 일하면,그에 따른 대가를 받습니다.이것은 세상의 당연한 원리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 보냄받은 우리에게는세상으로부터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 보상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주어집니다.그래서 때로는, 우리가 좌절하고 낙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내가 이렇게까지 희생했는데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까?”그런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하나님께서 우리를 신령한 복으로 채워주시겠다는 약속은 주셨지만,즉각적인 눈에 보이는 보상은 보장하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사랑에는 대가가 따른다

팀 켈러 목사님이 사랑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내가 짜장면을 좋아해도, 그녀와 함께 스파게티를 먹는 것—그게 사랑이다.”

사랑에는 늘 대가가 따릅니다.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상대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나도 함께 시선을 돌리는 것.그게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도 말합니다.사랑은 오래 참고, 견디고, 양보하고, 손해 보는 것이라 했습니다.사랑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제자가 주인보다 클 수 없다 (마태복음 10:24-25)

이제 오늘 본문 마태복음 10장 24-25절 말씀을 봅시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집주인을 발세불이라 하였거늘,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나는 너희의 주인이요, 너희는 나의 종이다.”

내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다가조롱을 받고, 핍박을 받았다면너희도 동일한 고난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너희가 나보다 더한 핍박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그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격려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시고 살리셨습니다.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셨고,앉은 자를 일으키셨으며,중풍병자를 고치셨고,심지어 죽은 자까지 살리셨습니다.

또한 풍랑이 이는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사랑과 권능,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상 사람들은 주님의 이 놀라운 행하심을 향해**"그가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이적을 행한다"**고 말했습니다.

바알세불—즉 사탄의 왕, 마귀의 권세를 힘입어 이 일을 행한다고 비방했던 것입니다.이 얼마나 큰 모독입니까?

그렇다면, 주님께서 이와 같은 모욕과 조롱, 핍박을 받으셨다면,그분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 역시도세상 속에서 동일한 조롱과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예수님은 미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그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마태복음 10장 24-25절의 말씀입니다.

“이리 가운데로 보내진 양”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이리 떼 가운데로 던져진 양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세상이 우리의 선한 마음,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희생의 정신을 보고칭찬하거나 환영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성경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조롱하고 핍박할 것이라고 하십니다.왜입니까?

세상은 죄에 속했기 때문입니다.죄는 하나님을 대적합니다.그렇기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또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간다 할지라도,세상은 그 영향력을 반기지 않습니다.그 이유는 간단합니다.세상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렇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조롱받고, 환난 가운데 놓인다 할지라도—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낙심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주님은 이렇게 위로하십니다.

왜냐하면,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힘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으로부터의 인정, 격려, 박수갈채보다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칭찬과 격려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위로는 잠깐이고,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끝이 납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장)

히브리서 12장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바라보셨기 때문에,십자가의 고통과 수모를 참고 견디셨습니다.

그리고 3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우리가 세상에서 조롱을 당하고,억울한 일, 고난을 겪는다 할지라도—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을 몸소 참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왜 참아야 합니까?

많은 성도들이 이렇게 묻습니다:“하나님, 왜 제가 참아야 합니까?”“하나님, 왜 제가 져야 합니까?”

우리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데도세상이 우리를 조롱하고 모욕할 때—“왜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십니까?”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하나님은 이 땅에서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보상을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오히려 하나님은 언제나 “신령한 복으로 우리를 채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때로 낙심하고,절망하고, 주저앉을 때도 있습니다.하지만 그때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상은 이 세상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순교의 자리에서도 믿음을 지킨 사람들

예수님 당시,주님을 가장 많이 핍박한 사람들은바리새인들, 서기관들,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로마인들이었습니다.

오늘날 로마 땅을 밟아보면수많은 순교의 현장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땅을 파면 유적이고, 벽을 보면 피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곳을 보며 이렇게 묻습니다:"어떻게 저렇게도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었을까?"

사자에게 던져지고,불태워지고,짐승의 밥이 되도록 내던져지는 가운데서도—그들은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압니다.작은 가시에만 찔려도우리의 몸은 온통 고통에 휩싸입니다.

그런데 손발이 묶인 채,짐승들이 달려들도록 내던져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들은 하나님을 선택했고, 믿음을 지켰습니다.우리가 잘 알다시피,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시고 살리셨습니다.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셨고,앉은 자를 일으키셨으며,중풍병자를 고치셨고,심지어 죽은 자까지 살리셨습니다.

또한 풍랑이 이는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사랑과 권능,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상 사람들은 주님의 이 놀라운 행하심을 향해**"그가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이적을 행한다"**고 말했습니다.

바알세불—즉 사탄의 왕, 마귀의 권세를 힘입어 이 일을 행한다고 비방했던 것입니다.이 얼마나 큰 모독입니까?

그렇다면, 주님께서 이와 같은 모욕과 조롱, 핍박을 받으셨다면,그분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 역시도세상 속에서 동일한 조롱과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예수님은 미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그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마태복음 10장 24-25절의 말씀입니다.

“이리 가운데로 보내진 양”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이리 떼 가운데로 던져진 양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세상이 우리의 선한 마음,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희생의 정신을 보고칭찬하거나 환영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성경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조롱하고 핍박할 것이라고 하십니다.왜입니까?

세상은 죄에 속했기 때문입니다.죄는 하나님을 대적합니다.그렇기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또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간다 할지라도,세상은 그 영향력을 반기지 않습니다.그 이유는 간단합니다.세상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렇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조롱받고, 환난 가운데 놓인다 할지라도—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낙심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주님은 이렇게 위로하십니다.

왜냐하면,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힘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으로부터의 인정, 격려, 박수갈채보다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칭찬과 격려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위로는 잠깐이고,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끝이 납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장)

히브리서 12장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바라보셨기 때문에,십자가의 고통과 수모를 참고 견디셨습니다.

그리고 3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우리가 세상에서 조롱을 당하고,억울한 일, 고난을 겪는다 할지라도—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을 몸소 참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왜 참아야 합니까?

많은 성도들이 이렇게 묻습니다:“하나님, 왜 제가 참아야 합니까?”“하나님, 왜 제가 져야 합니까?”

우리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데도세상이 우리를 조롱하고 모욕할 때—“왜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십니까?”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하나님은 이 땅에서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보상을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오히려 하나님은 언제나 “신령한 복으로 우리를 채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때로 낙심하고,절망하고, 주저앉을 때도 있습니다.하지만 그때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상은 이 세상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순교의 자리에서도 믿음을 지킨 사람들

예수님 당시,주님을 가장 많이 핍박한 사람들은바리새인들, 서기관들,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로마인들이었습니다.

오늘날 로마 땅을 밟아보면수많은 순교의 현장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땅을 파면 유적이고, 벽을 보면 피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곳을 보며 이렇게 묻습니다:"어떻게 저렇게도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었을까?"

사자에게 던져지고,불태워지고,짐승의 밥이 되도록 내던져지는 가운데서도—그들은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압니다.작은 가시에만 찔려도우리의 몸은 온통 고통에 휩싸입니다.

그런데 손발이 묶인 채,짐승들이 달려들도록 내던져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들은 하나님을 선택했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갈 때에정말 세상 사람들로부터 악을 끼치고 해악 가운데 있었고,세상 사람들을 오히려 우리가 대적하다가 그런 일을 당하면그 일에 대한 결과로 우리들이 얼마든지 그런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지만,

내가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을 살아갈 때에그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라는 이 문제를 가지고“죽이느냐 살리느냐”라는 그 얘기를 했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잠깐만 내가 예수를 부인한다라면 얼마든지 살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초대교회 성도들은 전혀 그런 살 길을 택하지 아니하였다는 겁니다.그러고서 그들은 그렇게 죽어갔다는 것이죠.

우리나라 초대교회, 우리나라 한국 교회의 역사도 순교의 역사입니다.다시 말씀드리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 시대 때 핍박을 당했던 것처럼,우리 한국 교회도 죽음 앞에서 이 믿음과 이 신앙을 지켰던순교의 피 계보가 흐르는 그런 나라인 것이죠.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지금 절두산, 외국인 선교사들의 묘지가 있는 곳,그 밑에 내려가면 한강 절두산 성지입니다.

왜 ‘성지’라고 표현을 했냐면요,예수를 믿다가 많은 사람들도 핍박을 당할 뿐만이 아니라,예수를 믿다가 목이 잘려 죽어갔던 그 곳이기 때문에절두산이라는, 그런 ‘성지’라는 지명이 붙은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초대교회, 그 순교의 현장에서 어떤 일까지 벌어지게 되냐면요,자기를 죽이려는 사람 앞에 성경을 내밀면서“당신도 내가 믿는 예수를 믿으라”고 하며성경을 내밀고서 죽어갔던,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것이죠.

여러분들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살려 주십시오, 내가 예수를 안 믿겠습니다”라고 얘기하고그 현장에서 빠져나오면 죽이려는 사람도 그냥 안 죽이고 이렇게 할 텐데,죽어가면서 성경을 내밀며 “내가 믿는 예수를 너도 믿으라”고자기를 죽이는 사람한테 얘기한다는 게, 이게 가능한 그런 얘기입니까?

아니면 그 성경을 받아든 사람이 얼마나 그 사람을 조롱하겠습니까?금방 죽을 사람이 자기가 믿는 예수를 믿으라고 이야기를 하니까요.그 사람을 향하여서 목을 치는 그러한 사람이 얼마나 황당했겠느냐는 그 얘기죠.

그런데 그렇게 성경을 전달하면서 죽어갔던 사람,그 성경을 받아 가지고 왔던 사람이“예수 귀신 붙었다”고 하면서 성경을 한쪽에다 내팽개쳤는데,

그렇게 성경을,“이 사람이 도대체 죽어가면서 내밀었던 이 성경에 어떤 내용이 있길래저 사람은 죽어가면서도 이것을 부인하지 않았지?”라면서호기심에 그 성경을 읽다가 예수를 믿은,그런 초대교회, 우리나라 초대교회 성도들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것이죠.

우리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세상으로부터 보상은 받지 못합니다.세상이 오히려 우리를 핍박하고, 죽음의 자리로 내어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한번 보자는 것이죠.그렇게 죽어갔지만, 그렇게 순교를 했지만,지금 와서 그 결과가 모든 사람이 예수를 안 믿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오늘날 한국 교회가 천만이라는, 거의 1/5이라는 많은 숫자가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그 결과를 만들어낸 겁니다.

한 영혼이 순교함으로, 한 영혼이 죽어감으로 말미암아 전파했던 그 예수를우리가 오늘날 믿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는 세상으로부터는 우리가 보상은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한 사람의 눈물과,그 한 사람의 이 생을 통하여서 수많은 사람들의 열매를 맺는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이죠.

그래서 26절을 여러분들 한번 보십시오.성경이 우리들에게,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무엇이라고 얘기를 하냐면요,

26절을 보시면,“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우리가 아무리 감춘다 할지라도,진리가 있다면, 진리 되신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감추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언젠가는 나타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생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난주에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린 것처럼,우리의 믿음이 생명이기 때문에, 이 생명은 언젠가는 드러난다는 것이죠.

여러분들 이제 봄이 되어서, 여러분들이 가꾸는 텃밭 같은 데 보면,얼마나 많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습니까?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씨앗이 싹을 틔운 겁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는다’라는 그 얘기는,우리 안에 ‘예수’라는 생명을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셨기 때문에이 생명이 세상에 어떤 핍박을 만나도,세상이 어떤 환난을 당한다 할지라도,심지어 그것이 죽음의 자리까지 내어준다 할지라도,이것이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는 그런 날이 있다는 것을주께서 우리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죠.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들이 흘리는 눈물,우리들이 흘리는 땀,우리들이 흘리는 핏방울—

이런 것들이 그냥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그런 때가 있고,하나님께서 나타내실 그런 때가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당하는 핍박과 환난들, 조롱들—이런 것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라고주님께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계시는 것이죠.

그래서 27절을 한번 보십시오.27절을 보시면 뭐라고 얘기를 하시냐면요,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 모든 것을광명한 데에서 말하며,너희가 귀속말로 들은 것을지붕 위에서 전파하라.”

주님께서는 처음에는 제자들에게만 이야기를 하신 겁니다.제자들에게만 말씀하셨는데, 이 얘기는 뭐냐면,어두운 데서 이 모든 것들을 이야기했다는 겁니다.집 안에서만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의 그 말씀을 들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이제는 세상 가운데 너희들이 담대하게 전파하라.산 위에 올라가서 이것을 전파하고, 지붕 위에 올라가서 이것을 전파하라라고이야기하고 계신 것이죠.

초대교회 메시지는 그렇습니다.

주가 그리스도 되신다라는 겁니다.주가 죽으셨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를 다시 살리셨다라는 겁니다.

다른 메시지가 없었습니다.뭐 예수님이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고,앉은 자를 일으키셨고,풍랑 이는 바닷가를 잔잔케 하시고—이런 것들이 그들이 전파하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셨는데 너희들이 그를 죽였다.그러나 하나님께서 능력의 손을 펴셔서 그를 다시 살리셨다.이 예수를 너희들이 믿어라.

이것이 초대교회의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랬다면 이 제자들에게 뭐라고 얘기하냐면,"이것을 세상에 나가서 너희들이 전파해라.개인적인 말 하지 말고,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우리 위해 살아나셨다"라는 것을 전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성경 29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면,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그 이유에 대해서 다시 말씀하고 있는데,29절을 보시면,

“참새 두 마리가 한 아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그 이유가 무엇이냐면요,참새 두 마리가 한 아사리온에 팔린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아사리온’이라는 화폐 단위가 등장하는데,한 노동자가 하루에 받는 삯이 한 데나리온이지 않습니까?데나리온의 16분의 1 정도 되는 금액이 한 아사리온입니다.

그런데 참새 두 마리가 한 아사리온에 팔린다는 거예요.지금 식으로, 미국식으로 이야기하면참새 한 마리가 그냥 다임 하나에, 뭐 한 10센트 정도에 팔린다는 얘기겠죠.

그러니까 지극히 작은 것을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그러기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이 말씀의 이유는,아무리 보잘것없는 참새라 할지라도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너희는 참새들보다 더 귀한 존재들이 아니냐?

너희들이 세상에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세상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당하고, 조롱을 당한다 할지라도두려워할 것이 없다.

하나님의 능력의 눈,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눈동자가너희와 함께하고, 너희를 따를 것이다—이런 이유로 말씀하신 거죠.

우리가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마태복음 6장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죠.“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 드레핀 꽃을 보라.”

저들은 스스로 먹지 않고 입지도 않는데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그러기에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하나님의 명령 없이는 떨어지지 않고,하나님께서 그것까지 보살피고 계신다.

하물며 주님의 이름을 들고 세상 속으로 나아간 너희들을,그냥 두시겠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30절에 뭐라고 말씀하시냐면요,“너희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느니라.”

머리털이라는 표현은 무엇이냐면요,요즘은 머리가 많이 없으면 시술을 해서머리카락을 하나하나 심기도 하고,그래서 굉장히 귀하게 여기기도 하지만,

보통은 머리카락이 하루에 30~50개 정도 빠진다고 하죠.근데 우리는 빠졌는지도 모릅니다.왜냐하면 아무 관심이 없는 겁니다.

우리 육신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것 중 하나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그래서 주님께서 머리털로 비유하신 건,

"너희가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그것조차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인 거죠.

그래서 참새를 비유하시고,머리털을 비유하시면서 말씀하시는 건,

“사람들이 아무리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 함께 하신다.너희와도 함께하신다.”

그러기에 너희들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쓸 때,왜 우리가 두려워하느냐—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하나님이 마치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믿음이 약해질 때 우리는 두려움 속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적인 하나님을 바라볼 때,세상의 문제들이 사라지고,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도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너희가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이유—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리고 31절 말씀 보시면,“두려워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아사리온에 팔리는데,너희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인데,그 참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외면하시는 것이 아니고,또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여러 문제들 또한그냥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이끄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신다.그 의미가 이 말씀 속에 담겨 있는 거죠.

우리가 보통 보면,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합니다.지금 당장 일어나는 그 문제 때문에,우리는 두려움 속에 쌓여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 가운데어느 한 순간에 문제를 주셨다 할지라도,우리는 그 문제 하나에 매여 두려움 속에 갇혀버릴 때가 참 많죠.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전체 인생을 놓고 그 하나의 문제를 던지시는 분입니다.우리 인생 전체를 책임지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 속에서 주시는 결론은 이겁니다.

"나아가서 너희들이 전도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이건 단순히 전도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너희들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이런 일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이 말씀은 그 사실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어떻습니까?여러분들이 정말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고,세상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고,또 세상 사람들로부터 어려움을 만난 적이 있으셨습니까?

지금은 뭐, 미국에서 그런 일들이 잘 없을 겁니다마는,예전에는 전도를 하러 나가다 보면,문을 두드리고 “예수를 믿으십시오”라고 하면물바가지가 날아왔던 그런 적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물 세례를 받았던 그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런 핍박을 당하면서도 대항하거나,그들을 향해 같이 복수하거나,같이 맞대응하거나 하면서 지나간 것이 아니라,그냥 물을 맞으면서도, 웃으면서 지나갔던그런 전도자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여러분들, 모르겠습니다.한국에서 전도를 해보신 분들이 그런 얘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이건 실제로 우리 세대 안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입니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릴 때,오히려 반기는 사람이 아니라,더 밀어내고, 핍박하고, 물을 뿌리고, 욕을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만난다 할지라도,우리는 그때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그런 삶을 살아갔던 적이 있다는 겁니다.

이제는 이렇게 전도하는 사람들이우리 주변에 많지 않지만,

우리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이런 비슷한 종류의 환난과 조롱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이유 중 하나는,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세상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리고 능히 너희의 영혼을 죽일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지,몸만 죽일 수 있는 세상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은 어차피 한정된 시간 속에서 살 수밖에 없지만,우리의 영혼영원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영혼을 책망하시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실제로 여러분, 출애굽기를 보면 그런 예가 등장합니다.출애굽기 1장에서, 애굽 왕 바로가 히브리 사람들의 번성함을 보고어떤 계책을 내놓게 되냐면,남자가 태어나면 다 죽이라, 산파들에게 명령을 합니다.그리고 여자가 태어나면 살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산파들이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차마 죽일 수 없어서그대로 살려두다가 발각이 됩니다.

항변하기를 뭐라고 하냐면요,“히브리 여인들은 너무 건강해서, 우리가 애 받으러 가기도 전에 애를 낳습니다.”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산파들에게 있어서, 바로 왕은 굉장히 두려운 존재입니다.언제든지 목숨을 아삭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들은 바로 왕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하나님을 더 두려워했다고 출애굽기 1장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산파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을 살아갈 때,얼마든지 조롱을 받을 수 있고,얼마든지 핍박을 당할 수 있고,환난 가운데 몰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우리의 선함, 우리의 착한 행실을 땅에 묻지 않으십니다.

언젠가는 우리의 착한 행실이 드러나고,우리의 선한 행위가 밝혀지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할 때,능히 영혼을 살리시는 하나님으로부터힘을 얻고,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그것은 우리를 세상에서 하나님 쪽으로 부르셨다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세상 속에서 하나님 쪽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 부름받은 자로서 세상에서 살아갈 때,항상 조롱과 환난, 핍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건,절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요청이요,하나님의 명령이며,성도된 우리의 책임이요,우리의 사명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한번 살아가 보십시오.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받는다면,“아, 내가 그리스도인답게 잘 살고 있구나.”하는 표시입니다.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당한다면,“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제대로 살아가고 있구나.”하는 되돌림입니다.

세상에서는 위로를 얻지 못하고,상을 받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 가운데 함께하심으로 인해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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