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어떤 기도가 필요할까요, 자녀가 잘 되길 바라는 기도, 내일 장사가 잘 되고, 건강하길 바라는 기도일까요? 기도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의 증거입니다. 그럼 그 증거는 저희에게 어떻게 나타나야 할까요? 오늘의 말씀입니다.
(아래 내용은 영상에 문제가 있어 재생이 불가능하시거나 설교내용을 자세히 알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해 영상내용을 문자로 저장한 것으로 웹 디자이너가 영상을 들으며 타입을 치다보니 오타가 많고 띄어쓰기에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리며 고쳐야 할 부분은 이메일로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다.)
시편 72장 1절~20절 말씀
불행하게도 이 땅에 전재의 소식이 전해 왔습니다. 추운 겨울에 전쟁으로 인해서 고통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기도를 부탁드리고 신속히 평화적으로 모든 것들이 해결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이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느니라.
우리가 창세기 1장 1절만 믿음으로 가지고 있으면 이땅에서 힘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하나님과 연관 시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간단한 진리마져도 믿음으로 받아 들이질 못하길 때문에 이땅에서 살아 갈때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참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 하셨다는 믿음이 있으면 이 땅 또한 하나님게서 다스려 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면 나 또한, 우리의 삶 또한 우리 하나님께서 책임 지시고 보호 하신다는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천치를 창조하셨다는, 이 믿음, 하나님 믿음의 눈을 떠서 이것을 우리의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해 주십시요, 라는 기도를 우리는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누구든지 그 독생자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성경에서 쓰인 이 두 구절만 믿어도 우리 신앙은 풍성합니다. 겁날것이, 힘들 것이 없다는 것이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감성과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는 힘들고 어려운 그러한 마음들이지, 그 힘들고 어려움들이 우리의 믿음 까지도 뺏어 가지는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 두 구절만 여러분들이 묵상을 하시 길 바랍니다. 물룬 신약 선경에 얼마나 풍성한 은혜로 말씀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도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까. 제가 다시한번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얘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려 나간다, 우리를 이끌어 나간다라는 겁니다. 한국의 대선이 한 열흘정도 남았죠. 그리고 지나간 과가의 대통령들을 쭉 살펴보고, 이 땅의 기억에 남는 위대한 지도자들을 살펴봐도, 전부 흠이 있고, 우리에게 만족함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 나름들은 훌륭하게 백성을 위해 헌신했고 통치했다고 얘기하지만 그래도 그 간운데서 모든 사람들을 만족 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고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려 나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부족함이 없고 오직 우리의 삶속에는 만족함만 있을 뿐이다, 라는 그 의미를 여기 말씀에서 봤습니다.
구약성경에 우리가 잘 아는 야곱이 등장합니다. 야곱은 대표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노력으로 자기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가꾸어 나갈려는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 좀 지칠것 같고, 잠이 올것 같으니깐 야곱이야기를 하는게 아닙니다. 야곱은 구약 성경에서, 아니면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자기의 의지, 자기의 힘으로 살기를 원했던 가장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 할때와 하나님께서 내가 너의 인생을 다스려 주마 할 때와 어떤 삶이 더 풍성 했겠습니까.
풍성한 걸로 우리가 생각하는 풍성 한것으로 치면 자기 스스로 자기 힘으로 개척했을때가 더 풍성함을 많이 누릴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그런 물직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야곱의 삶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그는 환도뼈가 꺽어져서 평생을 불구자로, 지팡이을 짚고 살아가는 삶을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복 되었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가 받은 복은 나중에 12명의 아들들을 쭉 앉혀 놓고서 기도를 해주는데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은 할아버지안 아브라함보다, 아버지인 이삭보다 더 뛰어나다, 더 큰 축복을 받았다,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내가 받은 이 복을 너희들에게 내려주마, 라고 기도를 했다는 겁니다. 오늘 여기 72편을 보면 다윗왕이 아닌 솔로몬 왕이 기도를 한 것 같지만, 왕이 솔로몬에게 유언적으로 남긴 내용입니다. 너가 앞으로 왕이 될 때 어떤 식으로 통치 해라, 물론 솔로몬 한 사람만 놓고서 기도를 하는것이 아니라 솔로몬 이후로 태어날 왕들, 또 이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려 나갈 모든 왕들을 향한 다윗의 기도 내용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다, 통치하 심을 받는다 라는 것이 이 땅에 있는 왕들이 통치하고 다스릴때와 우리가 하나님으로 부터 통치함을 받을때와 어떤것이 더 풍성한 것이 72편을 통해 비교 해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우리는 영적인 교제가 끊어 졌지만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그 끊어진 관계를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대속 하심으라 말미암아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를 회복새켜 주신 겁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얘기는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고 하나님께 기도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은 그러한 존재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 할 수 가 있습니다. 힘드시면 하나님께 울부짖으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여러분들의 그 부족함, 힘든 것, 얼마든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관계를 회복시켜주셨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영적인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면서 우리에게 부탁 하고자 하는, 곧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하고 원하는 하나님의 자녀된 특징이 무엇이냐면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올바름을 행한다는 것이죠. 두번째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물론 예수님께서도 모든 율법을 이 안에 다 담으셨지만 하나님의 백성 된 그러한 사람들의 특징이 의를 행하는 것과 이웃 사랑으로 나타난 다는 겁니다.
의를 행한다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특징인데, 여러분들이 가끔 가다가 어떠한 큰 일을 앞에 두고 결정을 해야 돼는 그런 상황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큰일이 아니라도 작은 일을 놓고 결정을 해야되는 그 순간이 있다는 것이죠. 그럴때 하나님, 나에게 지혜를 주셔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해 주십시요, 이 마음이 의를 향한 마음 입니다. 옳은 그런 마음이란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냥 쉽게 그냥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 내리기까지 아주 그런 힘든, 우리의 지혜로 부족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죠. 그럴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녀로, 옳바른 결정을 내리게 해 주십시요. 이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 이라는 것이죠. 또 주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고 말씀 하셨는데, 이웃을 그냥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너가 네 몸을 가꾸는 것처럼, 아끼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대강 대강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아끼듯이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이 두가지가 하나님 자녀된 사람들의 두가지 특징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 라고 이야기를 할 때에 이 두가지가 꼭 나타나야 됩니다. 아무리 쉬운 일들이라도 할 지라도, 여러분들이 함부로, 스스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마시고, 주님, 주님 이시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 시겠습니까 라고 한번 물어 보라는 것이죠. 한번 기도를 해 보라는 것이죠. 물론 기도를 해서 바로 하나님께서 이쪽이다, 저쪽이다 가르켜 주시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그 긍휼한 마음을 주십니다. 만약 우리가 잘 못 선택했을때는 우리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그런데 선택이 잘 하고 올바르게 선택을 했을때는 우리의 마음이 평안합니다. 여러분들이 경험을 해 보셨으리라 생각이 되는데 잘 못 결정했을 때는 뭔가 마음이 불편해요.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 또한 불편항 경우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에겐 힘들고 어렵지만 내가 잘한 결정에 대해서는 내가 힘들어도 마음이 편안합니다. 덩달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안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72편에 여기에 이제 나와 있는 것처럼 왕의 교훈, 왕이 어떻게 이 땅을 다스려 나아가야 되는가에 대해서 다윗이 기도하는 장면인데 결국은 이 땅에 있는 다스리는 통치자들 보다도 나중에 이땅의 주인 되시고 다스리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실 그 나라, 그 통치, 거기에 대해서 포커스를 맞췄다 라고 생각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전 세계의 254개 정도의 나라가 있다고 합니다. 한 나라에 통치자가 한 명 이라면 254명의 통치가가 있는데, 그 가운데 좋은 통치자도, 나쁜 통치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통치자들 중에 우리나라에서는 그래도 세종대왕 하면 성군이었다, 통치를 잘 했다, 후세 자손 들에게 좋은 유산을 남겨 줬다, 이렇게 꼽을 텐데 1760년대 오스트리아에는 이러한 왕이 있었습니다. 한 왕이 비가 오는 날에 마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밖을 보니 비를 맞으면서 어떤 사람이 힘 없게 다 낡은 구두를 신고서 진흙탕을 걸어가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본 왕은 궁휼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인이게 자신의 구두를 벗어 저 사람에게 가져다 주라, 하니 신하가 '아니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백성이 다 저렇게 살 기도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차 않에 있던 왕이 '아니다. 나는 마차안에 있고 비도 맞지 않고, 궁에 돌아가면 내가 신을 신이 많이 있다. 내가 보니 저 사람은 신이 한켜래 밖에 없다. 저러다가 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 라며 신을 가져다 주라고 했다는 겁니다.
이게 오스트리아에 1760년대에 있었던 왕의 미담이 입니다. 이 정도 보면 저희는 충분히 저 왕은 좋은 왕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래도 부족합니다. 이 땅에 있는 왕들은.
그래서 지금 다윗이 솔로몬을 향해서 1절을 보시고 어떻게 기도 하는지 보시죠.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판단력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공의를 달라고 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자녀를 위해서 기도 할 텐데, 자녀들을 위하여서 어떤 기도들을 주로 하십니까.
건강하게 해 주십시요, 좋은 배우자 만나게, 사업도 잘 되고, 직장도 잘 다니게 해 주십시요, 라고 기도 하시겠죠. 이 기도들도 중요한 기도 들이죠. 그런데 여러분들 지나 오니 어떻습니까. 그런 기도들, 어떤 기도들은 응답 된 기도들도 있고 응답되지 않은 기도들도 있죠.
그런데 그것 보다도 더 중요한 기도가, 여러분들이 젊으 셨을때는 자녀들을 위해서 얼마든지 그런 기도를 해오 셨는데, 이제는 노년이 되고 하니 지금 와보니 어떤 기도가 가장 필요한 기도 인것 같습니까. 그래도 보편적으로 보면 '그래 믿음의 기도 였지' 라고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 할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자녀들이 이땅에서 살아 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들을 위한 기도도 중요하고, 복된 기도들 입니다. 그리고 부모로서 당연히 그렇게 기도 해야 겠죠.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저녀들을 위해서 정말 하나님을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 주변에 신앙이 있는 친구들을 두게 해 달라는 기도, 하나님께서 기뻐 하시는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서 자기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좀 많은 사람들에게 배풀 수 있는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 이런 기도들도 중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다윗은 솔로몬을 향해서 다른 기도 다 제껴놓고 주님의 판단력과 주님의 공의를 주십시요, 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님의 판단력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냐면 옳바른 재판을 하게 해 주십시요, 라는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과거나, 현제나 옳바른 재판을 한다는 것은 혹시라도 억움함을 당하지 않게, 당하는 사람이 없게끔 옳바른 판단력을 내리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과거도 그렇고 현제도 그렇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항상 재판에서 불리함을, 억울함을 당했죠. 그러나 부유한 사람들은 유능한 변하사를 쓰면 아무리 세상에서 욕하는 손가락질 하는 그러한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용케도 그 법에서 다 빠져 나왔다는 거죠. 불공평 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다윗은 솔로몬에게 무엇이라 얘기를 하냐면, 주님의 판단력, 올바른 재판을 왕이 하게 대 달라는 기도를 했다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어느날 말씀을 전하게 위해 길을 가고 계시는데, 어떤 사람들이 서기관과, 바리세리인과 홤께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한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여자가 간음 현장에서 잡혔는데 모세의 율법에는 이러한 자를 돌로 치라고 명령을 하셨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돌로 칠까요, 말까요, 라고 이야기를 한 겁니다. 물론 예수님을 심판하려, 판단하려 이 얘기를 했던 거곘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혀서 땅에 글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서기관과 바리세인들과 군중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이냐면 너희 중에 죄가 없는자가 먼저 돌로 치라,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양심에 가책을 받은 사람들이 어른부터 다 돌맹이를 던지고 다 흩어졌다는 것이죠.
그때 예수님께서는 다시 땅에 글을 쓰시면서 여인에게 다가가서 너를 정죄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다 돌아 갔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 하지 않는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뭐냐하면 예수님께서 나중에 사람이 율법을 위해 있는것이 아니라 율법이 사람을 위해 있는것이라 라고 말씀 하시죠. 율법보다 고귀한 한 사람의 생명을 말씀하신 겁니다. 예수님의 지혜가 뛰어났던 올바른 판단력이 여기에서 등장한 그러한 것으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여왕기상 3장에서는 어떤 얘기가 나오냐면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가 나옵니다. 솔로몬 하면 솔로몬의 재판이 가장 유명하죠. 어느날 여인 둘이서 같은 날 아이를 낳습니다. 그리고 두 여인이 한 집에서 사는데 3일째 되는날, 한 여인이 잠 버릇이 아주 고약했나 봅니다. 그러다 자기가 난 아이를 그엎에 있는줄도 모르고 자다 깔아 뭉개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아침에 보니 자기 아이가 죽어 있는 것을 보죠. 깜짝 놀래서 그 아이를 흔들어도 깨지를 않는 것이죠. 옆에 보니 다른 아이가 다른 여인의 옆에서 자는데, 얼른 보자기에 싸서 자기 아이라 우기는 겁니다. 나중에 여인이 일어나서 분명히 저 아이가 내 아이인데 자기 아이라고 우기는 여인을 모습을 가지고 솔로몬 앞에 나가서 재판을 하는 것이죠. 그때 솔로몬이 판결을 내리는데, 그 아이를 칼로 반으로, 절반으로 가르라, 라고 얘기를 했죠. 그때 생모되는 엄마는 '아닙니다, 그냥 저 여인에게 주십시요.'라고 말했지만 생모가 아닌 여인은 내 것도 되지않고 저 여인것도 되지않게 공평하게 나눠 주십시요, 라고 얘기를 했다는 거죠. 그때 솔로몬이 판결을 하기를 생모는 그 자녀가 죽는것을 보지 못한다 라며 생모에게 아이를 주기로 재판을 하죠.
아주 지혜로운 재판으로 유명한데 재판을 내릴 수 없을만큼 힘들고 어려운 결정을 내릴때 우리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런 지혜를 왕에게 달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겁니다.
그리고 4절 말씀을 보시면,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라고하고 17절 말씀을 보시면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왕이 올바른 통치하고 왕의 공의로운 재판을 통해 억울한 사람이 사라질때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으며, 모든 민족이 다 복되다, 이렇게 얘기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물며 이 땅에 있는 왕들 조차도 올바르게 통치를 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복을 누리고 많은 사람들이 복되다 하리라 라고 얘기를 하는데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려 나간다 하실 때 우리에게 어떤 은혜가 임할까, 어떤 풍성함이, 어떤 놀라운 일들이 일어 날까요.
여기 뒷부분에 보면 그 비슷한 얘기들을 하고 있는데 12절에서 14절 말씀을 보시면,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에게 생명을 구원하며'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광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들이 다 자기 중심적이죠.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사는 그러한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왕이 한 나라를 다스려 나갈 때 가난한 자가 압박을 받고 핍박을 받는 그러한 사람들이 공평한 재판을 통해서 압박을 받지 않고 핍박을 받지 않는다, 그럴 때 평강이 이루어 지고 많은 사람딜으 복을 이룬다 라고 이야기르 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자기 중심적이라서 하나님의 통치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거에 대해서는 그렇게 달가워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 옛말에 사돈인가요, 사촌 인가요, 주변에 친한 사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라는 그 얘기가 어떤 사람은 잘 해석해서 잔치를 하면서 배터지게 먹어서 배가 아프겠지, 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예수를 믿어도 그렇게 배가 아픈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되는거.. 특히 저사람은 정말 왕이 하나님으로 부터 복을 받았다 라는 것을 보면은 같이 축하해 주고 같이 기뻐해 줘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스스로가 생각할때에 그런 것들이 그렇게 썩 달갑게는 와닿지는 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 지금 이야기를 하기를 지금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그때가 되면 이 모든 것들이 다 공평속에, 하나님의 공의로움 속에 들어오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공유로움이 다스리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억울함이 없고 가난함에서 다 벗어 날 것이다, 라는 그 얘기를 하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통치하을 받을 때에는, 다른 성도들도 하나남의 통치함을 받는 겁니다. 그래서 함께 기뻐할 수가 있는 겁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다른 이들이 잘 되는게 싫은가 하면 우리가 너무도 주일 예배에 포커스를 맞춰서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이 말이죠.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의 6일 동안의 삶은 내 스스로가 살아 가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만나는 시간이 너무 짧다 보니 내가 예수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그 마음을 이웃들에게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잘 되는것이 썩 달갑지만은 않은 겁니다. 그러니깐 무언가 잘못된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가 평소에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하고 세상에서의 6일동안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살아 계셔야 하는데 예배를 드릴 때에만 온전하게 드릴려고 하다보니 정말 중요한 세상에서의 6일의 삶을 너무 등하시 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게 한국 교회의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너무 주일날 예배, 모임 에서의 예배, 이런 것들만 따지다 보니 실질 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 나타자니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평강을 누리는것, 복음을 누리는 것이 그렇게 달갑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고 나서, 16절에 보시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산 꼭대기의 땅에도 곡식이 풍성하고 그긋의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 같이 왕성하리로다.' 온전한 왕으로서 온전한 통치가 이루어질 때에 그 결과가 산꼭대기에도 곡식이 풍성해 진다라고 이야기 하고, 그것의 열매가 레바논같이 풍성하다 이야기하고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 같이 왕성하리로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이 이야기가 뭐냐하면 왕의 통치함으로 말미암아 풍요로운 시대가 공유돌의 되었다 라는 것을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이땅에서의 왕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스려 나갈때에, 야곱같은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스려 나가는 그 시대가, 풍요로운 시대가 도래 할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가 '산꼭대기에 땅에 곡식이 풍성하고' 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꼭대기에 있는 땅에 곡식을 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척박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여러 기계가 발달되어 있어 얼마든지 냇가에서 물을 끌어다가 산꼭대기까지 댈 수가 있지만 이 당시에는 산꼭대기에 있는 땅은 좋은 땅이 아닙니다.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 기다리는, 하늘만 바라보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우리나라, 대한민국처럼 산 속에 있는 땅이 아니라, 여기는 팔래스타인 지역의 땅 안입니다. 그러니깐 여름에는 전혀 비가 내리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밭이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통치하실 때에 산꼭대기에 척박한 땅이 풍성한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게 은혜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릴때는 산꼭대기에 있는 곳이라도, 매마른 곳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풍성하게 굽어 내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실 때에 우리를 은혜로 다스리시는데, 밭이 어디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산에 밭에 있을지라도, 사막에 밭이 있을 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곳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얘기를 무엇인가 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근거가 아무것도 없는 거죠. 산꼭대기에 있는 밭이라는 것은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는 땅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땅에 풍성한 곡식이 맺는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다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척박한 신앙을 가졌다 할지라도 매마른 신항을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는 우리 심령에도 하나님의 풍성한 열매, 곡식이 자란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데로, 전반 부에는 훌륭한 왕이 이땅을 다스릴 때에 그의 백성들을 다스릴때에 결과가 나왔다면 그 뒷부분 20졀 까지는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그 곳에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그곳에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광야에서 40년간 살때에 그들에게 곡식을 어디에서 내렸냐 하면 하늘에서부터 내렸습니다. 우리 인간들의 생각은 곡식은 땅에 있는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곡식을 땅에 내리지 않고, 땅을 통해서 주시지 않고 하늘에서 부터 내리 신 겁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물을 얻을려면 어딘가 지대가 낮은가, 해서 낮은 곳에서 땅을 파면서 혹시라서 물이 있을까 해서 기대하면서 땅을 팝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반석을 터트려서 샘을 내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 갈때에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다, 통치 하심을 받는다 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것에서 부터 내리시는 하나님이 있다는 겁니다. 지금 그 얘기를 여기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성 안에서도, 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성 안에서도 이런 풍성한 곡식을 누립니다, 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보통 보면은 성은 어디에 있냐하면 산 꼭대기에 있습니다. 그럼 사람들이 성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농사를 짓고 저녁이 되면 다시 들어옵니다. 그런데 지금 성 안에도 풍성하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깐 농두렁 앞에 모든 곡식들이 풍성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가난하자 가리지 않고, 풍요로운 곳, 기름진 곳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동일하게 내린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7절에서 19절 말씀을 보면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이 찬송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창구하리 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그를 복대다 하리로다. 홀로 기이한 일ㄷ르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 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 지어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에서 홀로 귀한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겁니다. 그 가운데 그가 지으신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겁니다. 그 가운데 우리를 그의 백성으로 부르셨고,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살면서 억울한 일을 만날 때가 있고, 우리의 모습이나, 생활으로 인해 다른 이로 부터 멸시를 당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고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그런 곳에서는 억울함이 사라지고 불평함이 사라지고, 눈먼 자가 눈을 뜨고, 포로된 자가 자유가 된것 처럼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에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비록 산꼭대기에 있는 밭이라 할지라도 성안에 있는 그러한 창고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여기 지금 시편 72편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함을 받았다면 이 통치함이 이제는 증거로, 우리 삶의 증거로 나타나야 하는데 그 증거가 뭐냐 하면 그 의로움과 이웃사랑으로 나타난다라는 것을 시편 72편이 우리들에게 교훈을 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들이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실 겁니다. 가장 중요하고 복된 기도는 그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아는 자녀가 되게 해 주십시요, 라는 그 기도가 가장 복된 기도고 또한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가장 우선 되어야 하는 그러한 기도의 내용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우리가 알고 통치하심을 안다고 할때에 이 모든 은혜가 의로 나타나 이웃들에게 이 사랑이 흘러가는 이 교훈을 우리들에게 주는 겁니다. 이게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죠. 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풍성하게 임하는 복된 한 주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일날만 그저 나와 하나님께 예배 하실 것이 아니라, 일주일의 삶에서도 이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풍성하게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Comments